천생연분, 평생웬수

유숙자

살아가면서 웃음 지을 일과 씁쓸한 기억, 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 괴로워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도 우리는 이승에서 살아가는 삶이 좋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견디기 버거웠어도 극복할 힘 또한 주어지기에 지나고 나면 잘 견디어 온 스스로 대견스럽다.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시련이 좋은 경험으로 삶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앤도르핀이 나올 정도로 웃은 적이 있다.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는 몇 분의 노인분에게 질문했다.

“이제까지 함께 사시면서 잊히지 않는 일, 힘드셨던 일, 섭섭하셨던 일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말씀해 보세요.”

진행자의 물음이 떨어지자 할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묵묵부답인데 할머니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가슴속에 서리서리 얹혀 있던 한 맺힌 사연들을 꺼내 놓기 바쁘다. 마치 고치에서 실이 풀어져 나오듯 쉴 새 없이 평생의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계속된다. 노인들은 순박하셔서 말을 거르지 않기에 듣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뿐 아니라 포복절도할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가정마다 거의 비슷한 불평이 할아버지들의 외도와 음주벽, 도박이었다. 할머니들은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지난 시절이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억양을 높인다.

“옛날이니까 멋모르고 살았지 요즈음 같았으면 어림도 없어,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시댁 귀신이 되어야 친정 부모님께 효를 한다고 하니 그저 참고 살았지.”

목소리와 표정이 어찌 그리 상반될 수 있을까, 말씀은 그리하셔도 표정은 하나 같이 세월 속에 감정이 곰삭은 듯 별로 억울해하지 않은 모습이다.

 

할아버지들은 지금이라도 “여보 미안했소, 고맙구려” 하실 것 같았으나 반응은 하 나같이 시큰둥하다.

“사내대장부가 다 그런 거지, 뭘 그걸로 이제껏 마음속에 둬?”

조금도 대장부처럼 늠름하지 않고 아주 왜소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불평 없이 살던 마누라가 갑자기 마이크 앞에서 도전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중에서 가장 곱상하게 늙으신 할아버지는 “내가 좀 인기가 있다 보니 할멈 속을 썩였지, 할멈 미안해” 하며 겸연쩍어하신다.

 

우리가 가끔 경험하는 일 중 재미있는 것은 동상이몽의 야무진 꿈이다. 그것은 부부 사이에 특히 더하다. 상대방도 나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영 아니었던 기억. 그때의 씁쓸함을 “우린 궁합이 안마저” 하며 얼버무린다.

 

방송이 절정을 이루며 진행자는 노인 내외분들께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함께 사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일치하는가를 묻는 순서다. 이 부분이 방송의 핵심이어서 같은 답변이 나오는 부부께는 큰 상품을 준다. 우선 진행자가 할아버지께 고사성어를 드리면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여보, 당신하고 나 같은 관계를 뭐라고 하지? 우리 부부 같은 사이 말이야. 왜 있잖아 4글자로 된 말.”

기골이 장대하고 잘 생긴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자신을 계속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을 재촉한다.

“으응, 평생 웬수”, 할머니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 할아버지는 당황한다.

“천생연분이지 뭐가 평생 웬수여,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생각이 자신과 다름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는지 안색이 굳어진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부부 싸움이 날 것 같다.

 

할머니가 젊었던 시절에는, 등줄기가 휘도록 논농사 밭농사 다 거들면서 시어른 모시고 집안 살림하며 아이들까지 키웠다. 할아버지는 사내대장부였기에 밤이면 농사에서 쌓인 피로를 동네 사랑방에서 술로, 화투장으로 풀었다. 개중에는 할머니가 불평하면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것이 나의 운명이려니 하고 순종하며 안으로 삭이었다. 과연 할머니의 말씀대로 평생 원수 같이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것이 결코 평탄한 길만 걷는 것이 아니기에 뜻이 맞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의 근원인 사랑으로 감싸며 내밀한 아름다움을 키우셨으리라.

 

진행자가 익살을 떨며 다시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평생 고생만 시키고 속도 썩여 드렸는데 지금도 할아버지가 좋으세요?” 할머니는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신 순발력 있는 재치를 보인다.

“이제는 내가 봐주며 살지, 영감은 나 없으면 못살아, 나를 무척 좋아하거든.”

미운 정 고운 정이 흠뻑 들어 얼크러져 사시는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싸움을 해도 이웃들이 말리지 못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 마누라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고 배우자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할머니들의 한이 어찌 이것뿐이었을까. 할아버지 탓에 할머니가 섭섭하셔서 우실 때는 모른척하다가도, 시어머니께 꾸중 듣고 울고 있는 아내를 위해서는 슬며시 나가 들꽃을 따다 주시더라는 어느 할머니의 말씀은 그 시대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랑 방식, 살뜰한 부부의 정을 나타냄이리라. 

 

층층시하에서 표현 없이 살았던 시절에도 한 송이 들꽃에 마음이 녹아들고 그저 팔자려니 하고 인내하고 사셨던 할머니들, 그 억눌린 삶의 대가와 인고의 열매가 자손들 번듯하게 키워 대처로 유학 보내신 것 아닐까? 아내의 권리 이전에 며느리와 어머니의 의무가 더 강조되었기에 효와 도리를 다하며 평생토록 묵묵히 사셨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감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으레 받쳐주기만 바라는 권위의식의 남자와 인고를 삭이며 의무를 강요당해도 묵묵히 살아가는 여자가 있기에 한 사람은 천생연분으로 생각할 때 다른 한 사람은 평생 원수로 생각하면서도 해로하며 별문제 없이 살지 않는가. 그 시대의 여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수고와 희생의 밑거름으로 사랑의 둥지를 만든 것이리라.

사람의 됨됨이란 배움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 주어진 여건에 충실하며 슬기롭게 사신 분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내 것으로 하고 싶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세대에는 고전 같은 이야기일는지 모르겠으나 가슴에는 진한 여운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