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 부인

                                                                                                                                                          유숙자

오후의 햇살이 권태롭기만 골목에서 꿈을 줍는 부인을 본다. 쭈그리고 앉은 형상이 줌밖에 되지 않는 그녀의 등을 보며 존재의 참모습은 고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보낸 인고의 세월. 밀려오는 그리움을 억누르며 매일 가슴으로 드린 기도는 핏빛 울음이다.

 

모레노 부인은 우리 동네 파수꾼이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던 17 전에도 오늘 같은 모습이었다. 부지런히 골목을 누비며 집을 들락거리고 뭔가를 열심히 했다.

그녀는 심하게 백납을 앓고 있다. 온몸을 가리기 위해 사계절 구별 없이 검은색의 긴옷을 입고 머플러로 얼굴을 감싸고 있어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해가 있는 동안은 골목 어디서나 그녀를 쉽게 있다. 어느 집이나 가리지 않고 10 채가 넘는 직장인들의 집을 돌보아 준다. 잔디에 잡초를 뽑고 신문이나 쓰레기통을 거둬들여 안마당에 넣어준다. 때로는 열쇠를 맡겨 놓은 집에 가서 설거지며 청소도 해준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나 열매를 주워 봉지에 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페스탈로치가 환생한 듯싶다.

 

모레노 부인의 남편은 소방관이었으나 20 화재를 진압하다 사고로 숨졌다. 아버지를 몹시 따랐던 아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더니 12학년이 되면서 집을 나간 이후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행여 아들이 돌아오려나 싶어 여행 번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심장이 바작바작 타는 것같이 조여드는 기다림의 아픔 속에서 몸인들 성할까마는 잊기 위하여 무엇엔가 육신을 혹사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었다. 닥치는 대로 남의 일을 맡아 했다. 노동에 파묻혀 있는 시간만이 자신 삶의 근원적 숙명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편모슬하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기다림은 있었다. 온종일 집안에 갇혀 무서워 떨며 지내던 외로웠던 시절. 때문에 나가는 엄마가 미워 아침이면 옷소매를 잡고 소리 죽여 울었던 기억을 지금까지도 가끔 꿈꾼다. 그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사람이 옆집의 파파 할머니였다. 이따금 간식도 갖다 주고 할머니 어렸을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어쩌다 할머니 품에 안기게 되면 스르르 잠이 왔다. 편했다. 일하러 가지 않는 할머니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이미 기다림은 시작되었나 보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남아돌아 주체할 없는 시간을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할애하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잊으려고 시작했던 일이었으나 차츰 일은 즐거움으로 변했고 건강이 좋아졌고 누군가의 힘이 되어준다는 것에 보람과 기쁨이 생겼다. 밤이면 피곤하여 쉽게 잠들었다. 일거양득-. 허리를 굽혀 일하다 지혜를 주운 것이다.

 

기다림에 목마르던 시절은 나에게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나는 남편과 오래 떨어져 살았다. 1970년대였으니 국제전화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때라 기다리게 되는 것은 편지였다. 보고 봐도 나지 않았고, 편지를 쓰고 있을 남편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웠다. 대문을 들락거릴 때마다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우체부가 하루 다녀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열어보지 않고는 견딜 없었다.

 

모레노 부인도 하루 같이 우체부를 기다린다. 행여 아들에게서 어떤 소식이라도 오지 않으려나 우체부가 시간이면 길가를 서성인다. 세월 동안 통화의 전화도 없었는데 편지를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면서도 아들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많은 세월을 지워 갔건만, 골목 어귀를 바라보며 있을 그녀의 눈빛은, 희망이었다가 절망이었다가 허무가 짙게 깔린다. 애써 잊어버리자고 생각하는 머리보다 정직한 마음은, 찬바람 이는 겨울나무에 덩그랗게 매달린 까치집같이 흔들린다.

그의 거실에는 빛바랜 아들의 사진이 활짝 웃고 있다.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예전처럼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빌 같다면서 그녀는 금세 목이 멘다. 아직 크로짓 속에 걸려 있는 운동복과 모자, 나란히 짝지어 있는 운동화가 퇴색된 아들의 흔적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근래에 모레노 부인의 모습이 넉넉하게 변하고 있음을 본다. 연륜이 줄무늬 긋고 지나가 이제는 그녀를 할머니로 변모시켜 놓았으나 번민을 초탈한 평화롭고 인자한 모습도 함께 선물로 주었다.

감사의 계절에 우리 이웃은 모레노 부인을 위하여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손길이 거쳐 가지 않은 집이 없고 동기야 어떠하든 간에 한결같이 이웃을 위해서 헌신했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자리에서 모든 이웃이 그의 형제이며 자매가 것을 묵시적으로 약속했다.

 

달빛이 흥건히 거실을 적시는 밤이면, 귀뚜라미 한밤을 울어 지새우는 때면, 처연한 그리움에 잠겨 몸을 떨고 있을 그녀가 생각난다. 기다림 중에 가장 어려운 사람을 기다리는 일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속히 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녀의 나이테가 굵어지기 전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