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슬픔의 숲 / 안차애
아파트도 한자리에 오래 자리잡다 보니
나무가 되어가나 보다
오래도록 바람에 가슴 뜯기며 살다 보니
뿌리가 생겼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창만 열면 새소리가 바쁘다
새들이 드디어 아파트에 나무처럼 깃들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앞 베란다 창에서
오후 설거지 무렵이면 부엌 창 쪽에서
낮고 높은, 강하고 여린 주파수를 보내온다
그러고 보니
네가 오랜 여행을 떠나고 혼자 남겨진 뒤부터다
오래 남겨진 아파트
오래 남겨진 공터 오래 남겨진 가슴 한편
새들은
꼼짝없이 한자리에 서서
슬픔의 뿌리만 내리는 것들에 제 둥치를 얹는다
지상엔 환한 슬픔의 숲이 하나 더 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