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두운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으레 봄은 따뜻하거나, 환하거나, 두근거린다. 이 모든 봄의 인상들은 세밀화보다는 인상파류의 그림에 어울린다. 봄의 기운에 벅차고 봄의 빛에 눈부시면 됐지 구태여 정밀한 디테일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봄에는 우리의 마음도 시도 넓은 벌판으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한의 봄시는 조금 독특하다. 이 시는 봄의 찬란함에 사로잡히지 않고 퍽 차분하다. 아마 봄 중에서도 ‘비’에 주목했기 때문에 차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차분함은 세밀함으로 이어졌다. 아주 얇은 붓으로 그린 것처럼, 그가 잡아내는 봄의 감각은 몹시 미묘하다. 미묘한 것은 감각뿐만이 아니다. 밤이 고요히 옷깃을 벌린다는 말이나, 비 내리는 소리가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다는 언어 표현이 탁월하다. 평소 잘 느끼지 못하는 변화들을 아주 섬세하게 포착해 내어 쓴 시라는 말이다.
이 시를 쓴 주요한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썼던 소설가 주요섭의 형이기도 하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성경에 나오는 인명을 활용해 자식의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요한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에 발간되었던 ‘창조’라는 잡지는 한국 최초의 종합문예지였다. 주요한은 이 잡지의 동인이자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는데, 1923년에 발표한 작품이 바로 이 시다. 이후 시인은 1940년대에 친일 활동을 한 바 있다. 그러니 짐작건대 이 시를 쓰던 시기야말로 주요한의 봄날이었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을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