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덕소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누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설과 추석. 우리네 대표적인 두 명절 가운데서 설은 아무래도 추석보다 흥성치 못하다. 오늘날 도시에서도 그렇지만 이전 농경 사회에서는 더했을 것이다. 곡식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땅도 얼었을 때 찾아오는 명절이란 어떤 의미일까. 설빔과 떡국을 나누는 복된 일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했을 리 없다. 시끌벅적 세배 올리러 다니는 사람들의 행복한 골목이 있다면, 반드시 어디엔가는 그렇지 않은 골목 또한 있다. 이 골목을 기리며 오늘은 축복과 풍요에서 비켜 있는 2월의 풍경을 전해 드리고자 한다. 이 풍경은 덕소에서 홍신선 시인이 담아온 것이다.
시인은 가난한 무엇과 가난한 무엇이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가난한 존엄을 지켜주려고 짐짓 모른 체하는 다른 외로움들도 보았다. 여기서 시인은 가난과 외로움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 대신 가난과 외로움이 한 일에,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나눌 풍성함이 없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는 것이 비극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얼음이나 갈대 같은 사소함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굴해 내는 사람을 일러 ‘시인’이라 부른다. 나아가 가난이라든가 외로움 등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을 일러 ‘시인의 마음’이라고 한다. 오늘도 어딘가에는 택배와 음식이 넘쳐나지만 어딘가에는 창백한 얼음과 갈대 같은 이가 빈손을 근심하고 있을 것이다. 밝은 골목이 있으면 어두운 골목도 있다. 이번 설에는 시인처럼 시인의 일과 시인의 마음으로 지내보아도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