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았다 / 장미숙
네가 웃는다. 환한 미소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시간과 각자의 생각 속으로 스며든다. 너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나는 너를 향한다. 또 하나의 눈은 너의 손에 묶여 있다. 시선의 오감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괜스레 미안함이 앞서 그 공간을 부질없는 말로 채우려 했다. 네가 그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물잔을 만지작거렸던 것도 같다.
많은 말 속에 정작 할 말이 없다는 것, 그랬다. 지극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의례적인 인사말로 너의 소중한 순간을 가볍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벼우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무겁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적당하게, 그러나 충분한 의미로 너의 나날들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각본에 있는 듯 필요한 말만 했다. 쓸데없이 부산스럽지도, 불친절하게 과묵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웃고 적당한 지점에서 표정을 바꾸고 적절하게 호응을 보냈다. 한 번쯤 말이 가진 편리함, 두루뭉술하게 말의 힘을 빌릴 수도 있으련만 너는 끝까지 이성적이었다. 그게 나로서는 해독하기 어려운 오래된 물음이기도 했다.
너는 아기 때부터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내보이지 않았다. 어린 것이, 겨우 백일 지난 아기가 울음을 잘 참았다. 그걸 참았다고 하긴 이상할지 모르나 너의 울음은 지극히 낮고 차분했다. 주위 사람들이 애 키우는 집이냐며 물었을 만큼 너는 조용한 아기였다. 아기가 자신의 처지를 알았을 리도 없건만 너의 눈에는 눈물만이 그렁했다. 앙앙 울었더라면 누군가에게 가 닿았으려나. 하지만 너는 어미의 사정을 알기라도 하듯 방긋방긋 웃었다.
작은 가게였다. 다섯 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물건이 들어오고 나갔다. 안쪽에는 큰 부엌과 방 하나가 있었다. 옆으로는 창고로 쓸 공간도 있었다. 그곳에서 너는 세상에 나왔고 아버지 없는 아침을 나와 함께 맞곤 했다. 조용한 골목길, 왼쪽으로는 넓은 들을 거느린 농로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한 소읍이었다. 백여 미터만 걸어 나가면 오일장이 있었다.
논둑 길옆으로 사계절 야생화가 피었다. 맑은 개울이 졸졸 흘렀고 개울 속에서 가끔 피라미를 보기도 했다. 유난히 쑥이 많이 돋던 논둑, 너의 아버지는 나와 쑥 캐는 걸 좋아했다. 몸이 아파서 멀리까지 나가지는 못했지만, 네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몇 번 논둑에서 쑥 냄새를 맡았다. 그것도 딱 한 계절, 너의 아버지는 치료차 집을 떠난 후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게에서는 과자나 라면, 담배, 아이스크림 등을 팔았다. 소주와 막걸리, 마른안주도 한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 가게를 인수했을 때 특이하게 출입문 옆에 홍고추를 갈아주는 기계가 있었다. 고추를 갈고 나면 옆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기계를 씻었다. 광명수퍼였던가. 광자만 뚜렷한 걸 보면 당시의 기억이 내게서 조금은 사라져버린 것도 같다.
가게 앞에는 작은 평상이 있었다. 그곳에는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앉아서 시간을 소일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면 그분들이 너를 봐주었다. 그들은 아기가 울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를 닮았는지도 분간하기 어렵던 그때, 나는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했다.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던, 의지와 상관없이 너를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져버린 그가 생각날 때면 너를 바라보곤 했다. 가게를 인수한 지 몇 달 만에 네 아버지는 서울로 떠나버렸고 나는 혼자 세상으로 나온 너를 안았다. 한 달 뒤, 네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원히 가버렸다. 네가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푸른 새벽이었다. 너를 재워두고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달빛이 가게를 온전히 비추었는데 주위는 컴컴하고 세상에 오로지 그 집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낙엽이 쓸리는 소리였을까. 환청이었을까. 노랫소리가 어딘가로부터 흘러들어왔다. 가게 뒤로 펼쳐진 들판은 추수가 끝난 뒤라 황량했는데 그곳에 달빛이 가득 고여 있었다.
누군가를 본 듯도 했다. 나는 빗자루를 든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소리를 따라갔다. 너의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터여서 조그만 자극에도 눈물샘이 터졌다. 들판을 헤매다 너를 혼자 두고 나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깨어 있었다. 울지도 않고 옹알이하던 넌 나를 보자 방긋 웃었다.
너를 할머니께 맡기고 집을 떠나던 날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 뒤로 일 년 동안 동굴 속에 갇힌 것처럼 어둠을 찾던 내게 너는 살아야 할 의미였다. 하지만 할머니 사랑으로 크는 널 나는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네가 잘 자라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너의 진정한 눈물을 본 적 없는 나는 어린 시절을, 청소년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된 너와 마주했다. 너는 나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을까. 지극히 이성적인 너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너와 나의 거리에는 분명 울음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그건 나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거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읍을 떠난 지 삼십 오 년이 흘렀고 너는 내게 완전한 가정을 꾸릴 동반자를 데리고 왔다. 너에게 가정이란 이가 빠져도 찌그러져도 안 되는 동그라미 같은 것이었다. 그걸 위해 너는 무던히도 자신과 싸웠을 것이다.
너의 웃음을 본다. 울음이 잦아들어 피어난 웃음 속에 어린 네가 있다. 내 앞에서 어리광 한번 피우지 않던, 피울 수 없었을 너의 십 대와 이십 대를 상상한다. 반듯한 존댓말로 다듬어진 너는, 말을 아낄 줄 아는 어른으로 내 앞에 고요히 앉아 있다.
(《표현 문학》2025년 제95호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