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뒷산은 참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나면 늙은 참나무 둥치와 그 주변에 각양각색의 버섯이 비밀을 발설하는 것처럼 돋아났다. 외할머니를 따라 버섯을 따러 뒷산에 자주 올라갔다. 외갓집에서는 칼국수를 끓일 때 버섯을 넣었다. 나는 애호박, 부추와 함께 밀가루를 풀어 넣은 걸쭉한 버섯국을 특히 좋아했다. 그 숲에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독버섯이 있었다. 이웃 마을의 어떤 노인이 버섯을 잘못 먹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도 있었다. 버섯은 무서운 거라고 했다.
싸리버섯이나 애기꾀꼬리버섯을 독버섯과 구별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식용 중에는 회색 삿갓을 쓰고 하얀 자루가 훤칠한 버섯도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버섯을 자칫 잘못 알고 바구니에 담았다가는 외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삿갓 안쪽에 붉은빛이 돌거나 버섯을 찢었을 때 뜨물 같은 국물이 나는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고 외할머니는 버섯을 삶아서 늘 차가운 물에 하루쯤 담가두셨다.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야생 버섯의 나쁜 독을 그렇게 해서 우려내려고 했던 것일까?
식물생리학을 전공한 서남대 김성호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그이의 책 《나의 생명 수업》(웅진지식하우스)에 나오는 이런 문장은 얼마나 멋진가. “버섯의 멋이 되려면 버섯보다 많이 큰 내가 먼저 버섯의 높이로 땅에 엎드리면 된다는 것” 나는 야생 버섯의 맛과 추억에 취하기만 했지 엎드려보지 못했다.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를 든든하게 등에 지고 앞으로는 너른 들과 섬진강을 펼쳐놓고 거기에 안온한 둥지처럼 웅크리고 있는 집이 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에 터를 잡은 이 운조루를 가보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다. 전국에 한옥 고택이 적지 않지만 나는 이 운조루만큼 고담한 집을 보지 못했다. 200년이 넘는 이 집의 나이 때문도 아니고, 사대부가 살던 집의 전통적인 양식 때문도 아니다. 운조루보다 나이를 더 잡순 한옥은 얼마든지 있고, 집의 구조가 유난히 특별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운조루는 조선 영 ‧ 정조 때 무관을 지낸 류이주가 지었다. 그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쌀을 퍼가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도록 쌀뒤주를 개방했다. 나무로 만든 큰 쌀통에 작은 손잡이를 만들고 거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어 두었다. 다른 사람도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던 이웃들에게 이 집의 뒤주는 단비 같은 것이었다. 주인은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이 뒤주가 늘 비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좌우익의 대립이 극심했던 곳이었다. 그 와중에 운조루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눔의 정신을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운조루 때문에 뒤주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뒤주 때문에 운조루가 빛난다. 내 지갑을 열어서 나를 빛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