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 최민자

 

1.

안나푸르나 롯지 안, 생김새와 말이 제각각인 등산객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눈이 가는 사람, 살빛이 검은 사람, 구레나룻이 푸른 사람…. 인스턴트 미역국과 컵라면을 후룩후룩 삼키고 있는 우리네 청년들 모습도 보인다. 긴 머리 여자와 민머리 남자가 수프 깡통을 따며 웃는다. 퀭한 눈빛의 현지인들은 카레와 밥을 손으로 비빈다.

제각기 자기 밥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은 굳이 다른 밥을 탐하지 않는다. 개 밥그릇의 사료를 염소가 넘보지 않듯이. 미역국에 만 밥을 폭풍흡입하고 있는 우리 팀들을 어느 팀도 부러워하는 것 같지 않다. 우리 역시 그들의 깡통 수프에 침 흘리지 않듯이.

같은 인간인데 먹이가 저리 다르다니. TV를 보다가 새삼 놀란다. 생긴 게 달라서 먹거리가 다른 게 아니라 먹거리에 따라 생김새나 민족성이 달라지는 것 아닐까. 같은 벌에게서 태어나도 로얄젤리를 먹으면 여왕벌이 되고 꿀과 호분만 먹으면 일벌이 되듯이 매끼 물고기를 먹는 사람과 귀리를 먹는 사람은 육신뿐 아니라 정신의 성분마저 다를 밖에 없겠다. 거친 음식을 먹지 않아 저작운동이 불필요해진 세대들이 얼굴 윤곽이 갸름해지고 인스턴트 식품을 먹고 자란 세대가 급하고 공격적이라 하듯이. 한솥밥 먹는 식구들이 서로 닮는 이유도 유전자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같은 먹이를 함께 먹고 같은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웃고 함께 근심하기에 인상과 표정이 비슷해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2.

학원 한의원 순댓국집 카페 부동산 술집…. 왁자하게 아우성치는 간판들 사이로 사내 하나가 걸어 들어간다. 간판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펄럭이는 혓바닥과 들쭉날쭉한 이빨들 같은 간판 사이를 기웃거리던 사내가 순댓국집 문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메뚜기를 잡아먹는 먹이피라미드, 자연계에서는 수명을 채우고 죽는 동물이 지극히 드물 만큼 대부분의 동물들은 잡아먹혀 죽는다. 먹는 놈도 결국 먹힌 놈이 되고 마는 약육강식의 숙명이라도 대부분의 동물에서 있어 최소한 동족은 먹잇감이 아니다.

반면 인간은? 불가사의한 잡식성 식욕으로 하늘 위에서 바다 밑까지 샅샅이 뒤져 먹는 것도 모자라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고 산다. 학원 선생이 순댓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의원집 딸이 학원에 다닌다. 국밥집 여자는 한의원 이층에서 침을 맞고 한의사는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재산증식을 한다. 텃밭 한 뙈기, 거룻배 한 척도 없는 도시 사람들은 기실 그렇듯 물고 물리는 네트워킹으로 서로가 서로의 밥줄이 되어 준다. 신경세포 사이 얼키설키한 뉴런처럼 개체와 개체 사이를 이어주는 촘촘한 관계망을 갉아먹으며 잔인한 돈 냄새를 풍기며 산다. 인간의 주식은 곡물도 육고기도 아닌 동료 인간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생각하면 참 신기한 별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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