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의 숲은 풍성하다. 열매들은 실팍하게 살이 오르고 다람쥐들은 겨울 양식을 모으느라 분주하다. 툭툭, 시간의 여백을 타고 알밤들이 떨어진다. 몇 알은 개울로 굴러가고 몇 알은 여뀌 풀 틈새로 숨는다. 나는 밤의 행방을 쫓아 풀섶으로 몸을 낮춘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놈은 금방 출타한 알밤이다. 어쩌다가 삼형제 밤이라도 만나면 횡재를 한 기분이다. 성급하게 떨어진 밤송이들도 더러 눈에 띈다. 아직 설 여물었는지 밤은 두피를 바짝 밀착시키고 완강하게 버틴다. 밤송이가 손마디를 따끔따끔 찌른다. 가시를 세우는 폼이 둘째 녀석의 모습과 흡사하다.
"여보 우리도 반려견이나 한 마리 키울까. 반려견은 꼬리치는 맛이라도 있잖아."
얼마 전 퇴근 무렵 아내가 나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평소에 개라면 질겁하던 아내의 말에 나는 적이 놀랐다. 연유인즉,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벽처럼 멀게 느껴지더란다. 어쩌다가 말이라도 걸면 단답형 대답으로 톡 쏘곤 방으로 들어가 버린단다. 머리가 커 간다는 증표려니 하면서도 마음 한 쪽은 영 서운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를 그렇게 쏙 빼닮았을까. 특히 작은 놈이 그렇다. 토라져서 베개를 끌어안고 굼벵이처럼 도르르 꼬리를 말고 돌아누운 폼이 영락없이 내 어릴 적의 모습이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 쪽이 아려온다.
어릴 적 나 역시 어머니에게는 늘 군림하는 자세였다. 내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했고 교복은 반듯하게 다려져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겸상을 했기에 노릿한 고등어 몸통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동생들은 곁눈질을 하며 상이 물려질 때를 기다려야 했다. 집안은 언제나 나를 중심을 돌아가는 시계바늘과도 같았다. 맏이는 부모맞잡이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유기儒家적 말씀을 잘못 해석했던 탓이리라. 부모와 대등할 만큼 맏이의 책임이 크다는 속뜻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여필종부니 삼종지도니 하는 남성 중심의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철없이 우쭐대며 만만한 어머니 가슴을 밤송이처럼 자주 콕콕 찔렀다. 그러다가 훌쩍 어머니 품을 떠났다.
서울에서 첫 직장을 잡을 무렵이었다. 그즈음 전화선을 타고 오는 어머니의 음성이 부쩍 쇠약해져 있었다. 생기 있던 목소리는 간데없고 "추석 때는 댕기러 오냐?" 하는 정도의 안부 말씀뿐이었다. 그러려니 하면서 귀향을 미루다가 친척의 결혼잔치 때 어머니를 뵈었다. 잔치가 파하고 혼주 집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가기로 했다. 파장 무렵 나는 잠자리가 마땅치 않아 무심코 당숙 집으로 가려는데 어머니가 불쑥 역정을 내셨다.
"니는 인자 컸다고 잠자리마저 에미와 떨어져서 자고 싶으냐!"
어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붙이셨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식이 멀게만 느껴졌던 모양이다. 먼발치에 있다가 아침이면 객지로 훌쩍 떠날 자식이 못내 섭섭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속을 모른 채 시큰둥한 마음으로 어머니 곁에서 잠을 청했다.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하룻밤이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고달픈 세상살이를 놓고 먼 길을 떠나셨다. 장성한 자식과의 하룻밤이 그토록 소중했던 어머니는 나에게 늦은 후회를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성글던 밤송이가 어느새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우쭐 가시를 세우던 밤송이도 시간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는다. 새파란 풋기를 죽이고 바람의 흐름에 순응한다. 수런거리던 숲도 초록의 결을 거두고 긴 사색에 잠긴다. 세월은 지난 일들을 명료하게 한다. 새파랗던 밤송이가 한 알의 알밤이 되기까지가 내가 걸어운 시간인 듯하다. 젊은 날은 떫고 비리던 시간이었다. 설익은 밤송이로 가시를 세우고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더러는 가시가 밖으로 웃자라 타인의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가시가 온전히 마음의 성찰로 가지 못하던 날들이었다. 시간은 결을 누그러뜨리는 묘한 마력을 지닌다. 돌은 세풍歲風에 탁마되고 마음은 세파世波에 무뎌진다. 언제부턴가 내 안에서 자식이란 씨방이 들어서면서부더 가시들이 차츰 순해지고 다소곳해져 갔다. 아버지란 이름표를 달고부터 떫던 삶도 조금씩 여물어져 갔다.
선득한 바람에 씨알 굵은 밤알이 떨어진다. 때가 되었다는 듯 밤은 앙다물었던 껍질을 벗고 홀연히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절로 벙글어서 뭇 생명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밤의 둥글고 넉넉한 마음을 본다. 한 알의 온전한 밤을 먹기 위해서는 찔리는 수고와 떫은맛을 보아야 한다. 하나의 삶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후회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내 삶도 밤의 여정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한입 오드득! 씹으면 입안 가득 배어 나오는 달짝지근한 맛, 톡 쏘지도 떫지도 않은 그 은은한 맛이 어쩌면 인생의 맛일지도 모른다. 그쯤이 인생의 맛을 아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가시를 세우던 봄날도 삶의 격랑에 떠밀리던 여름도 저만치 물러났다. 내 생의 시계가 어느덧 느린 보폭으로 늦가을을 지나간다. 어느새 닳고 뭉툭해진 발등 하나로 혼자 걷는 숲길, 산 아래로 펼쳐진 길이 고지도처럼 흐리다. 어쩌면 내 살아 온 날도 저와 같았을까. 쉰 고개 아등바등 넘어오던 발등이 시리고 아프다. 가시도 결기도 이제는 아이들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품안에 새록새록 감기던 녀석들이 어느새 까칠한 밤송이를 들이민다. 그래서 인생은 사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가. 저 밉살스런 밤송이들을 내 안으로 품고서야 비로소 그 옛날 어머니가 보인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식을 잠깐이라도 곁에 두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애진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맏이의 등에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를 또 얼마나 소원하셨을까. 그래서 어리석은 게 인생이라고 했는지. 늦었다 싶을 땐 이미 보이지 않는 얼굴들, 삶은 어쩌면 후회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멈칫멈칫 먼 산 묵뫼를 돌아보며 나는 이 늦은 후회를 아직은 더 지고 가야 할 듯하다.
새들이 어미 품을 떠날 무렵이면 세찬 날갯짓을 한다. 아이들의 톡톡거림도 이제 막 이소離巢를 시작하려는 새들의 날갯짓쯤으로 생각해 두고 싶다. 세월의 더께가 더 쌓이면 저 풋기도 차츰 수그러들겠지. 그맇게 한 발 한 발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상처입고 그 상처가 제 속으로 아무는 시간에 앉아 그 옛날 부모의 마음 한 자락도 짚어보겠지. 다만 그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시를 벗어 던지고서야 비로소 홀가분해진 알밤, 그 영근 말씀 몇 톨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산 위로 햇살이 내린다. 아직 올라 보지 못한 생의 등고선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완등을 향해 나는 다시 진발 끈을 조여 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