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새기다 / 김정화
주인장이 기막히게 전을 구워낸다. 지인을 따라왔다가 알게 된 이곳은 애주가라면 지나는 길에 한잔 걸치기 딱 좋은 선술집이다. 집 근처에 있어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면 저절로 찾게 되는 곳이다.
드문드문 들렀으나 한 번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이 나는 참으로 편하다. 주로 말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술집에서조차 입을 다물고 싶은 심정을 헤아려 주기라도 하듯이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안줏거리 장만에만 손길이 바쁘다. 그러니 민얼굴에 보풀진 스웨터만 걸쳐도 민망치 아니하고 누구와 가든 무슨 대화를 나누든 눈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딱히 튀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내 외양이 무척 다행이라 여겨본다.
나 또한 기억력이 흐릿하고 눈썰미가 신통찮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나무의 생김새를 들여다보고도 선뜻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만난 그는 예외다. 볼 때마다 내 정신을 쏙 빼앗는다. 누구나 단번에 기억할 만큼 멋진 이름에 늠름한 자태까지 갖추었다. 오늘도 나는 주문을 미루고서 벽에 걸린 그의 브로마이드 앞에 바짝 다가섰다.
둥글납작한 체형에 갑옷 같은 은빛 비늘을 걸치고 삐죽한 등지느러미를 세운 채 꼬리자루를 높이 치켜들었다. 몸집만 한 머리에 달린 눈은 하늘을 향해 부릅뜨고 비트박스를 풀어내는 래퍼인 양 툭 튀어나온 아래턱을 주억거린다. 아무리 물고기 그림이지만 저토록 의기양양할 수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그의 몸통에 있다. 양쪽 몸 가운데에 과녁 같은 보름달 문양의 흑색 점이 선명하다. 그 주변을 달무리마냥 흰색의 둥근 테두리까지 에워쌌다. 그 이름하여 ‘달고기’다.
달고기를 경상도에서는 광채가 훤하다고 허너구라고도 지칭한다. 지방에 따라 달돔, 달치, 달병어, 점도미, 정강이, 허풍쟁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얀 인근에서 잡히는데, 미식가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생선이다. 비린내가 없고 깔끔하여 국에 넣거나 구워 먹기도 하지만 주인장은 생선 스테이크나 부침개 요리가 제격이라고 추켜세웠다.
계란 물을 묻힌 노릇한 달고기전이 놓였다. 분홍빛 살결에 나뭇결무늬가 부드러운 따뜻한 전을 머금으니 입안 가득 달큼한 향이 배어든다. 한때는 커다란 머리 때문에 천대받던 물고기였으나 최근에는 청와대 식탁까지 달고기구이가 올라 몸값도 신분도 상승하였다. 셰프들이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소개한다고 했다. 음식 영화 ‘식객’에서는 수박 맛을 달고기 맛에 비유했으며, 달고기 횟감을 기다리는 낚시꾼들에게는 잘 잡히지 않는다고 손님 고기로도 통한다. 오늘날까지 달고기라는 이름값만은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동안 내가 멋지다고 여긴 물고기들은 금빛돔과 주홍바리와 초록달강어처럼 주로 고운 색깔을 가진 어종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달고기는 생김새가 우악해서 험상궂게 보일 수도 있으나 뭔지 모르게 사람을 이끄는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이 처음에는 달고기라는 낯선 이름이라 여겼지만 생각해보니 그의 몸에 박힌 검은 반점 때문이었다. 내친김에 퍼덕이는 달고기를 대면하고 싶었다.
주인장이 일러준 대로 술집 건너편 해변시장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영덕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오직 달고기 포만 떠서 파는 어물전이 있다. 주인아주머니 역시 달덩이같이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오전에 들여왔다는 생선 바구니에 달고기들이 그득하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빳빳한 지느러미를 세우고 주걱턱을 치올린 채 준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듯 세상을 달관한 표정이다.
가까이서 본 달고기의 문양은 더욱 선명하다. 마치 몸에다 먹물로 둥근 달 문신을 꾹꾹 새겨 넣은 것만 같다. 상자 속에 누운 냉동 달고기는 원시시대의 용맹한 기마 전사들을 떠올리게 했다. 페루 무덤에서 발굴된 잉카 미라와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발견한 어느 부족장으로 추정되던 시신에 문신이 새겨진 사진을 보았고, 영국 여행 중에 들렀던 대영박물관에서도 팔뚝에 문신이 남은 이집트 미라를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내 고향 김해의 가야인들도 문신 습속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현대인들은 주로 미적 기능으로 문신이나 타투를 하지만 고대인들의 문신은 신체의 치장은 물론 생존과 관련이 많을 터이다. 원시 부족들은 몸에 새겨진 기록을 중요시했다. 살을 파고 피부를 태워야만 문신이라는 몸 그림이 그려진다. 완성된 문양은 신분이나 종족을 나타내고 종교적 헌신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며 범죄자의 표식으로 나누기도 하고 용맹을 기리는 훈장의 의미도 있었으리라. 그중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가야인들의 문신 기록이다. 그들은 인간을 해하는 동물의 공격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특히 물속에서 일할 때 사나운 물짐승들을 피하기 위하여 벌레나 물새나 들짐승들의 그림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커다랗게 달 문신을 찍은 물고기의 살결을 쓰다듬어 본다. 제 눈알보다도 더 큰 둥근 점을 새기고 대양을 가르며 거센 해류에 맞서 여기까지 건너왔다. 얼마나 많은 생의 위기를 넘겨야 했을까. 하지만 가장 강적인 인간 앞에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장렬한 죽음 앞에 엄숙함이 인다.
족장 같은 퐁채를 지닌 달고기 한 마리가 도마 위에 누웠다. 금관가야의 철검을 떠올리게 하는 회칼이 전사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순간,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냥 통째로 주세요.”
포를 뜨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내장을 들어낸 달고기 한 마리를 달 빛 드는 베란다에 매달았다. 풍장이라도 시켜주는 것이 바다 전사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되었다. 늦은 밤까지 원고를 쓰느라 자판을 두드리다가 말라가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비록 달빛 비치는 법당 추녀의 풍경 물고기는 되지 못했어도 아예 몸에다 오롯이 달을 각인했으니 그는 풍경 물고기보다 한 수 위가 되었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수억 마리의 물고기 떼를 지나고 수만 명의 사람을 대신하여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일까. 밤바람을 맞은 물고기가 허공에서 검은 달을 흔든다. 쟁그랑쟁그랑…. 지난날 조각난 연緣이 유독 가슴을 저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