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솥 / 심선경

 

 

저것은 생김새가 다른 부비트랩이다. 아니다. 별도의 점화장치가 있는 클레이모어다. 아뿔싸!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가스 불 위에 설치한 시한폭탄이다.

 

“째깍째깍...” 예정된 시각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더는 참기 어렵다며 시한폭탄의 추는 맹렬한 기세로 회전한다. 엄청난 속도로 어둠을 관통하는 고속열차처럼 숨이 가쁘다. 하지만 쉽게 지치지 않는다. 강력하고 뜨거운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밀폐된 공간에 압축된 무언가가 강철로 무장한 몸을 찢고 곧 터져 나올 기세다. 지금 바로 말리지 않으면 자폭할지도 모른다는 협박처럼 그 소리가 다급하다.

 

얼른 조정 스위치를 찾아야 한다.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시한폭탄은 뜨거운 열기와 압력으로 팽창되어 마침내 우리 집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천장으로 튀어 오르고 사방으로 터져 엄청난 살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빨라지고, 점점 가까워진다. 터지는 순간을 알 수 없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누군가의 격한 분노가 저 속에 가득 차 있다.

 

우리네 일상이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듯하다. 저녁 9시 뉴스를 들으면 저마다 위험한 화약고를 가슴에 쟁여두었다가 애먼 곳에다 터뜨리는 바람에, 세상엔 사람다움이 들어설 자리가 너무 비좁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해진 겉과 달리, 속으로는 아픔이 깊이 파고들어 이따금 절망이 희망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한 생이기에, 나약한 생존의 단서만으로도 모두의 가슴속에 희망이 일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나만의 생각일까.

 

딱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때의 엄마를 기억한다. 잘 지내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민다며 찬 겨울인데도 창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잦은 사업의 실패로 하루가 멀다고 술판을 벌여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과, 번갈아 가며 사고를 치는 철부지 삼남매와 날마다 실랑이하다 보면 어찌 속에서 천둥 번개인들 치지 않았을까. 가정을 등한시한 아버지 대신 엄마는 남의 집 품팔이를 해서라도 작은 쌀독을 매일 채웠다. 젊었을 땐 안 해본 일을 하려니 손이 짓무르고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새벽이 되면 앞치마를 질끈 매고 부엌에서 밥을 지으셨다.

 

“힘든 하루를 견디려면 밥심이라도 있어야지.”

 

완고한 쇠붙이의 둥근 몸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욱여넣었을까. 가난의 고통, 세상에 상처 입은 자존심, 자식들이 바라는 것들을 무엇 하나 선뜻 내어주지 못하는 애달픔... 가녀린 몸과 쓰라린 마음으로 품어 안을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용광로 같은 밥솥 안에 켜켜이 쌓아 밀봉한 뒤 강력한 화력으로 형체도 없이 녹여내고 남김없이 태워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희망을 이야기할 때 희망은 언제나 환멸을 동반한다. 그러나 환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압력밸브와 추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불협화음은 엄마가 세상을 향해 내지르고 싶었던 비명이고,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발산하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것들은 저렇듯 소리를 내는 것인가보다. 어쩌면 압력솥에 한 영혼이 스며들어 비장한 노래를 엄마 대신 불러주었을는지도.

 

삽시간에 밥 탄내가 주방을 점령한다. 수차례 경고음이 울렸지만, 내 생각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압력밸브 추를 억지로 한쪽으로 기울인다. 팽창되어 있던 솥은 씩씩거리며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한 김 빠진 솥뚜껑을 여니, 밥의 절반은 바닥에 눌어붙어 있다. 우선 찬물로 열을 식혀주고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밑바닥에서 올라온 시커먼 물이 쇠솥 안에 가득 차오른다. 눈치껏 덜어낸 밥도 화근내가 나서 선뜻 식탁에 놓을 자신이 없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압력솥과 화해하게 되었다. 시간만 잘 지키면 새까맣게 탄 솥의 바닥을 더는 긁어내지 않아도 된다. 그 요상한 물건은 아무리 질긴 나물도 부드럽게 만들고, 견고한 뼈다귀조차도 단시간에 흐물흐물 녹여내는 묘한 재주를 가졌다.

 

“딸깍”, “칙, 칙, 치이이익...”

 

딸랑거리는 압력솥의 추가 심상찮다. 이제껏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내쉰다. 깊은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올라온 해녀의 숨비처럼. 어쩌면 오랜 병을 앓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엄마의 가느다란 신음 같기도 하다.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울음 섞인 노래를 꺼이꺼이 부르다가 마침내는 목이 잠긴다. 흘러나온 슬픔의 자국이 쇠붙이의 둥근 몸을 따라 몇 가닥 수직의 길을 내고, 젊은 날 삶의 격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시간들은 일순 멈춰서며 사위가 고요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한 끼 밥을 짓는 일은 먹고 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 따순 밥의 온기를 나눠주려고 새벽마다 밥솥에 쌀을 안쳤던 당신의 수고로움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진부하긴 하지만 꾸역꾸역 이어지는 삶의 일상성은 그 얼마나 경건한 일이던가.

 

위험한 물건을 유산인양 물려주고 내가 안전하게 길들이게 되기까지, 저기 식탁 끝에 앉아 조용히 지켜봐 주던 당신은 이제 내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의 언어를 지금에라도 이해하는 것은 엄마의 삶을 나도 똑같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끔은 암담한 생의 뒤편에서 울먹거리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여자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과거의 내 삶은, 시간을 조절 못해 밥을 태우고 성급하게 뚜껑을 열려다가 손을 데고 뜸을 제대로 들이지 못한 어설픈 날들이었다. 압력솥의 밥알들이 잘 익었는지, 설익었는지 뚜껑을 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걸음 다가서면 꼭 그만큼의 거리로 멀어지는 난해한 글의 행간처럼, 아직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구수한 밥 냄새에 허기가 진다. 밥솥 하나가, 집 한 채같이 무거운 저녁을 끌고 간다.

<수필과비평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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