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지 / 설성제

그것은 추락, 비둘기 한 마리가 카페 건물 테라스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주먹만 한 회색 돌덩이 같은 것이 빙그르르 공중회전을 하며 내 눈앞을 스치는 순간, 나는 친구가 얼마 전 개업한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막 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다. 비둘기 날개에 힘이 다했는지, 테라스 화단에 핀 꽃향기에 취했는지, 아니면 비를 피하다 처마 밑으로 들어와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추락 중인 비둘기 앞에서 내 심장 또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는 땡전 한 푼 없이 가게를 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제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다시 한번 카페 사업에 도전을 했다. 인테리어와 소품 구입에 수십 일 동안 잠을 설쳐가며 발품을 팔아 정성 어린 카페를 마련했다. 장사는 길목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듭된 추락으로 맘껏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공을 향해 독수리처럼 날 때도 있었지만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들기도 했으며 하루살이처럼 짧은 시간에 돈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어찌 보면 햇볕 좋은 날보다 궂은 날씨를 더 많이 만난 데다, 육체에 풍랑을 맞아 오랜 시간 병원에 있기도 했다. 차라리 어디든 추락하는 편이 낫겠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나마 착지를 하는 바람에 또다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여기에서 온전히 일어서지 못하면 이제는 정말 하늘을 날기는커녕 발걸음조차 뗄 수 없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나는 추락 중인 비둘기에 놀라 엉거주춤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다시 일어섰다. 비둘기는 테라스 모퉁이 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넘어지거나 드러눕지 않았다. 착지를 했다. 기계체조나 피겨스케이팅에서 본 매끄러운 착지는 아니었다.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지탱하는 선수처럼 아슬아슬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날개를 움칫거리더니 구석진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날개를 차분히 내리며 벽 쪽으로 돌아앉아 고개를 묻었다. 그 매끈한 몸통에서 따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료들은 어찌하고, 홀로 무슨 일을 만났을까. 먼 길을 날다 지칠 대로 지쳤을까. 그대로 한참 동안 가만히 있는 뒷모습이 측은했다.

테라스 문을 열었다. 내 발자국 소리를 감지하지 못하는지 기척이 없었다. 어쩌면 저대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면……. 가만히 다가가 쓰다듬어주려 했으나 나는 마음과 달리 헛기침을 하며 발을 쿵쿵 굴렀다. 비둘기가 놀라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게걸음을 췄다. 그러더니 힘겹게 옆 테라스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빗속으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아직 힘을 더 얻도록 가만히 두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개업일에 날아든 비둘기를 의아하게 여겼다.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개업한 카페에서 일어난 이 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손님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일렁이는 바람과 내리는 비뿐만 아니라 테라스에 날아든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앞으로 카페의 존폐에 대해 궁금증을 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여러 번 바닥으로 추락하며 몸도 마음도 상하다 보니 작은 일에도 간절해질 대로 간절해져 있었다.

사람의 앞일을 비밀에 부친 신이 우리 인생의 보이지 않는 퍼즐 한 조각만, 딱 한 조각만이라도 미리 보여주신다면 숨을 좀 쉴 수 있을까. 신은 미래를 알게 하는 대신 꿈과 희망을 가지는 자를 찾아 손을 잡아준다고 하지 않던가. 걱정과 불안과 낙심과 부정적 태도가 아닌 꿈과 희망으로 신께 감사의 메시지를 알릴 때 최선의 삶, 최고의 삶으로 끌어주시는 모양이다. 이제는 추락이라고 느낄 때가 끝없는 비상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기만 한다면, 그 비틀거림조차 두 손으로 떠받쳐주신다는 믿음으로 친구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IMF 시절에 작은 공장을 운영하다가 자본은 끊어지고 반품되는 물량과 휴지처럼 되어가는 어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이른 아침마다 식구들을 모아놓고 가족회의를 했다. 그날그날 해야 할 일과 태도와 각오에 대해 일러주었다. 모두 힘을 합해 걷고 뛰고 날았지만 가족은 조금 숨통이 트이는가 싶으면 또 숨이 막히고, 걷는가 싶으면 넘어지고, 나는가 싶으면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바뀌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바닥은 바닥을 낳고 추락은 추락을 낳았다. 그러나 마음마저 놓아버리면 안 되었다. 어떻게 착지할 것인가를 꿈꾸며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아야 했다. 치솟아 오르다 비틀거리며 추락을 느낄 때 중심을 잡고 최대한 상처가 나지 않도록, 그곳이 어디든 착지할 수만 있기를 바랐다. 다시 걷고 날기를 원했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았지만 끝내 그리되지 못했다. 착지의 힘을 잃고 오랫동안 신음했다.

친구가 테라스로 나왔다. 근심 어린 낯빛이었다. “추락하지 않았어. 착지했어. 잠깐 쉬러 온 것 같애."라고 말했더니 “더 쉬게 두지! 왜 그리 못살게 구냐?”며 미소를 함박 지었다.

이제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는 듯 친구의 마음은 온통 초조와 불안, 기대와 희망이 교차되고 있었다. 빗속의 먼 하늘을 희부윰히 날다 떨어진 작은 새 한 마리에도 가슴 졸이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친구의 어깻죽지에 커다란 날개 하나를 달아 주고 싶었다. 간신히 착지한 이 자리에서 그 날개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길 바랐다.

<선수필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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