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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협회 5월 봄나들이 후기

 

                                                                           벌침과 손톱 자르기/ 김영교

 

 

  LA 근교에 있는 플러턴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인이 사는 집 뒷길이 단풍으로 물들었던 어느 해 가을, 그 뒷산 풍경을 배경삼아 화폭에 담았던 옛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은 그 마을 근처 대공원에서 재미수필 봄나들이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침 7시 20분 우리 집 게이트 앞으로 문우 조앤이 왔다. 토렌스에서 110 번 N. - 91번 E 방면 프리웨이를 갈아탔다. 느긋하면서도 빈틈없는 조앤의 운전 솜씨가 편안하고 침착성이 엿보였다. 주말 아침이라 평소보다 일찍 공원에 당도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까운 곳에 뚜렷한 큰 글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배너가 걸려 있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는 성민희 회장이 회원들이 잘 찾아 오도록 마음을 썼구나. 그 옆에 신입 회원인 최근자 님이 보인다. 주위에는  피크닉 테이블 2개, 바베큐 그릴이 갖쳐져 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탁 트인 경관도 시원해 보인다.

 

   테니스 코트장 옆에 주차한 후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수필가족을 위해서 준비한 바베큐, 과일, 그리고 집밥 반찬은 헌신적인 조앤의 수고였다. 나의 약한 힘도 운반에 도움이 되어 기뻤다. 우선 테이블과 벤치를 물수건으로 우리 집 밥상 닦듯이 깨끗이 닦았다. 빨간색 책크 무늬 테이블보를 깔고 음식과 과일, 스낵을 가지런히 놓았다. 참외는 껍질을 깍아서 씨를 대충 빼고 썰어서뚜껑을 닫아 두었다.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돌아 보았다. 좋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깨끗하게 잘 관리된 공원이었다. 들어 올때 지불한 입장료 오 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숨어버린 쌀쌀한 오전이었는데도 운동복 차림으로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잘 가꾸어진 초록 잔디밭을  걷노라니 맑은 공기가 싱그럽다. 호숫가에 낚시꾼들도 부동자세로 뿌리내린 듯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향감각을 잃을 뻔했지만 낯선 이의 도움을 받았다. 그 넓은 공원 안에는 크고 작은 호수도 있고, 테니스 코트장도 있고, 운치 있는 산책로가 여러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운동했다. 허리부터 목 좌우 돌리기, 손과 발을 움직여주었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는 보약이 되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뭐 더 할 일이 없나 하고 살피는 데, 내 시야에 잡힌 지저분한 바베큐 그릴, 다가가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포일을 둘둘 말아 닦기 시작했다.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깨끗해져 기분이 좋았다. LA갈비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냄새와 맛을 상상하먼서.  2개의 긴 테이블과 의자 닦기를 끝냈을 때 손도 손톱도 어처구니없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릴의 기름때가 묻은 손을 씻어야 했다. 숯검정을 씻고 또 씻어도 손톱 사이에 까맣게 낀 숯 검댕은 그대로였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못 생긴 손에게 더 혹사를 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오른쪽 소매 끝자락도 굴뚝 청소부처럼 기름 땟국이 묻어났다. 손을 슬그머니 감추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저만치 김석연 목사님이 잔디에 앉아 등을 돌리고 뭔가 열심히 하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손톱을 깎고 계셨다. 그 시간 손톱깎개(nail clipper)가 왜 눈에 뜨였을까. 딱, 딱, 딱, 내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열쇠꾸러미에 달린 무게 때문에 여러 번 내 손에서 벗어나 손톱 깎개는 뒤뚱댔다. 나는 이참에 손톱을 아주 짧게 잘라냈다. 오른손, 그리고 왼손 차례로 기름 숯검정이 때가 드디어 손톱과 함께 사라졌다. 때 묻은 손톱에 신경이 쓰였는데 자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원에서 손톱 깎는 나의 모습, 회원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았을까. 아마 의아해했을 거다. 부득이한 상황이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이해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문득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 관계나 일 처리에서 편견으로 섣불리 속단한 적은 없었는지 나를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형편과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그냥 이해하며 배려하기로 마음 먹었다.

 

  말 못할 속사정에는 벌침 얘기도 있다. 목회에서 은퇴하고 의료선교 차원의 김석연 목사의 벌침치료를 익히 들어왔다. 클로버 꽃이 만발한 잔디 사이에 벌들이 낮게 날아들었다. 심한 통증 때문에 첫 번째 손가락 마디에 클로바 꽃 벌침이 꽂힌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난생처음 접해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5~6분 동안 지속해서 화끈거리고, 쑤시고 아파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유의 여신상처럼 손을 높이 들고만 있어야 했던 손가락과 손톱 수난의 날이었다. 참고 견딘 보람이랄까. 신통하게 지금 그 아픔이 사라졌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미국사회에서 점점 확산하고 있는 동양 한의학, 벌침의 신비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벌침치료에 임하는 마음마다 벌써 회복에 한발 다가선 것이라고 느껴졌다.

 

  젊은 회원 나광수, 여준영 두 분은 그 많은 분량의 갈비를 노릇노릇하게 잘 굽는 달인임을 인정한  날이다. 마무리 청소 담당은 장덕영 회원이 단번에 끝내 버렸다. 김화진 부회장의 재치있는 게임 진행과 성민희 회장의 리더십이 탁월했다. 그리고 맛있는 조앤의 집밥 반찬, 성 회장의 오징어 부침도 별미였다. 참석자 전원에게는 푸짐한 선물들이 안겨졌다. 풍족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회원들의 발걸음이 흥겨워 보인다. 내 발걸음도 사푼거렸다.

 

  재미수필가 봄나들이 모임, 5월의 푸르름을 깊이 들여 마시며 자연 품에 푹 안겼던 그 날은 즐겁고 행복해서 목을 뒤로 젖히며 웃고, 웃었다.

 

2016년 5월 1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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