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며칠 앞두고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 생일에 어디로 갈까? 양식 일식 한식?"

"일식으로 하자."

아이들이 데리고 가는 일식집은 정말 일본사람이 하는, 인심은 아주 야박하고 가격은 엄청 비싼 곳이다. 먹고 나올 때마다 다시는 이런 곳에 안 온다. 하고 나오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잘 먹었다. 인사는 한다. 

생일 당일날. 딸이 또 전화를 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찼다. 

"엄마, 우리 일식집 가지말고 이태리 레스토랑에 가자. 일식집은 아이들이 먹을 것도 없고. 우리 은아가 파스타 먹고 싶대."

"오케이. 오케이. 엄마는 아무데나 상관없어. "

대답을 경쾌하게 했다만. 주인공은 나인데 자기 딸 입맛에 맞추어 식당을 정하는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그래, 비 오는 날씨에 스시를 먹기는 좀 그렇지.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오후에 식당 앞에서 만났다. 차를 주차하고 걸어들어가며 딸이 말했다. 

"엄마, 마리오 바탈리 알아?"

생전 첨 듣은 이름이다. 

"마리오 바탈리? 영화배우인가?"

"아니"

"그럼 가수인가?"

"아니야, 엄마."

무식이 탄로난 것 같아 조금 창피해지려는데 딸이 재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정답을 말해준다. 

"이태리 최고 요리사야. "

"아아, 으음."

"이 식당이 이태리 쉐퍼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리오 바탈리가 운영하는 곳이야."

이태리 최고의 요리사 식당이라니 기대를 걸어볼 만 했다.

어른 넷에 3살, 6살 꼬마 둘. 모두 여섯인데 에피타이즈를 네 개나 시킨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음식이 반이나 남은 접시를 모두 가져가고 메인디쉬가 나왔다. 하나 같이 짜기만 하고 맛도 없다. 이태리 최고 쉐퍼가 했다는 음식이 동네 짜장면보다 못하다. 그래도 맛있는 척 꾸역꾸역 먹었다.

생일 케이크가 나와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부르고. 

큰 손녀가 생일 선물이라며 그림을 그린 공책을 준다. 가위로 잘라 삐뚤삐뚤한 종이를 스테이플로 찍어서 공책을 만들었다. 표지가 아주 근사하다. 

다음 장에 유니콘을 그리고 (무슨 뜻으로 그렸는지...) 

다음 장에는 할미 얼굴이라며 눈알이 옆으로 훽 돌아간 얼굴을 그렸다. 이마는 훌렁 까진 대머리에 파마머리가 뽀글뽀글. 옆으로 뾰족 나온 귀, 새빨간 입술. 세모난 코. 제 딴에는 엔간히 이 할미를 관찰했나 보다. 너무너무 잘 그렸다. 칭찬을 했다. 

나머지 페이지는 모두 비워두었다. 할미가 알아서 글을 쓰란다. 인심이 참 좋다. 

디저트를 시킨다. 아이들은 손바닥 크기만한 워플 과자가 터억 꽂힌 아이스크림을 시키고 우리게겐 커피와 케이크가 종류별로 나왔다. 그것도 한 입 먹고나니 너무 달아서 별로다.

식사를 마치고 파킹랏으로 나왔다. 발레 파킹피가 14달러다. 사위가 티켓을 거둬가더니 직원에게 주고는 또 우리에게 5불을 준다. 차를 가져오는 사람한테 팁을 주란다. 한인타운 식당의 발레파킹피는 2불이었다가 이제는 3불로 올랐는데 여기에 비하면 엄청 싸다. 텅텅 빈 파킹장에서 내가 파킹을 하는데도 요구하는 발레파킹피를 아깝다는 생각을 말아야겠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말했다. 

"마리오 뭐시기라 하는 이태리 최고 요리사가 하는 식당이라고 하던데 나는 맛도 없더라. 두 시간이나 앉아서 얄구진 것 먹고 나왔다.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잘 먹었다하고 고맙다 했다. "

친구들은 자기들의 경험담을 늘어놓기 바빴다. 

"우리 딸이 유명한 오페라 공연이 엘에이에 왔다고 보러 가자고 해서 사양을 못하고 따라갔는데 나는 이기 언제 끝나노 하고 참느라 혼났다. 그래도 잘 봤다. 하고 나왔다. "

"아이들이 좋은 영화 있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남편이 얼마나 코를 골고 자는지 챙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리는 심각하게 반성했다. 아이들의 효도를 받는 우리의 자세는 얼마나 불량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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