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핀의 사람들
박진희
"예술은 인간의 삶을 그려낼 뿐 아니라, 의미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줘야 한다." 러시아 미술 평론가 스크소프가 말했다. 얼마 전 이 명언을 증명하는 걸작을 만났다. 바로 일리야 레핀 (1844-1930)의 <볼가강의 뱃사람들 (Barge Haulers on the Volga)>이다. 이 그림을 만난 순간, 나는 레핀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스케치 작업을 위해 3개월 동안 볼가강을 여행하고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는 <볼가강의 뱃사람들>은 무더운 날씨에 땀과 극심한 피로에 절어 있는 인부들의 모습을 거의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화폭에 담고 있는 강렬한 작품이다. 레핀은 러시아 정교에서 사면당한 '카닌'사제를 11명의 인부 중 주인공의 자리에 그려 넣었다. 쳐진 눈매의 늙은 카닌 사제는 눈빛만큼은 도전적이며 포기를 모르는 듯하다. 비참해 보이는 인부들의 모습은 대체로 역으로 기울어져 커다란 배를 뭍으로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전진해야 하는 고달픔돠 긴장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중에 앳된 얼굴의 한 청년만이 몸을 뒤로 젖히고 끈을 고쳐 매는 모습으로, '이 상황을 언젠가는 벗어나겠다'는 각오를 전하듯 얼굴색과 옷 색도 선명하다. 칙칙한 색감의 인부들에겐 희망보다는 절망이 깊게 배어 있다. 그런 모습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혹시 나도 저런 표정으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동질감이 들기도 한다. 이 그림으로 레핀은 이십 대에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격찬을 받는다.
레핀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십 대에 성화와 교회벽화 등을 그리기 시작해 스무살에 왕립 예술아카데미 (Imperial Academy of Art)에 입학한다. <욥과 그의 친구들 (Job and His Friends)>과 <아이로의 딸의 부활 (Raising of Jarius' Daughter)> 등으로 성경에 해박한 지식과 미학적 완성도를 보이며 아카데미 콩쿠르을 휩쓴다. "화가는 사회 현상의 비평가라서 사회의 중요한 면들을 표현해야 한다"는 크람코스키의 가르침을 따라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품들도 있다. 시베리아 유배에서 돌아온 남자와 그 가족의 모습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전쟁에 나가는 청년을 안타까워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그린 <초년병의 이별> 등에서 19세기 역사와 사회적 상황들에 집중한다. 또한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을 통해 러시아의 종교적 민족성을 집대성해 보여주며, 재능 있는 예술가에서 시대의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17세기 초상화가인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 (Velazques)의 인물들처럼 생생한 표정과 감정이 돋보이는 레핀의 화풍은 동유럽과 서유럽 회화를 결합한 듯 독특하다. 레핀의 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념이나 사상, 경제적, 사회적 지위로부터의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1581년에 있었던 이반 4세가 임신한 며느리 복장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나무라다가, 며느리를 두둔하는 아들을 죽인 사건을 그린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 (The Terrible Evan Kills His Son)> (1870-1873)가 대표적이다. 폭군에 독재자가 되어 누리는 화려함을 가린 어두운 배경은 '재물과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를 역설하는 둣하다. 이반은 본인이 마치 칼에 찔린 듯한 표정으로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뜬 채로, 왼손으론 아들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막고, 오른손으론 아들의 허리를 힘주어 안고 있다. 죽음을 맞는 아들은 끔찍한 아버지를 용서하듯 눈물을 흘린다. 특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백 장 이상의 스케치를 해왔다는 레핀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두 사람을 다른 표정으로 습작했었다. 그런 그의 감정과 노력이 투영됐기 때문일까. 어이없는 실수로 자식을 죽인 어리석은 아버지가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그의 죄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단 한 점의 그림도 예사로 그리지 않는 레핀의 노력에 톨스토이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1675년 터키 술탄 무하메드 4세의 선전포고에, 웃기지 말라며 "땅과 바다를 모두 동원해서 터키를 치겠다"고 조롱하며 호탕하게 웃는 민중의 모습을 담은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 (Zaporozhe Cossacks Writing a Mocking Letter to the Turkish Sultan)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레핀은 생생한 묘사를 위해 1888년 드네프르강 부근에 사는 카자크 후예들과 거주하며, 그들외 역사뿐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를 느끼고 배우며 수십 명을 커다란 화폭에 담는다. 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를 방문한 톨스토이는 "인물과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비결은 율동적이고 섬세한 묘사"라고 충고한다. 과연 레핀은 그의 조언을 따라 각자의 표정과 몸짓, 소품, 의상도 모두 다르게 표현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역사적 사실과 현실감에 동요하게 한다. 그림 속 민중과 함께 명쾌하게 웃고 싶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레핀은 톨스토이 집에 머물며 <밭을 가는 톨스토이>, <맨발의 톨스토이> 등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가슴까지 늘어진 하얀 턱수염, 야성미가 돋보이는 눈썹,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철학자와 같은 표정, 흰색 상의를 입은 성인의 품위, 거기에 마치 삶의 근본을 맨발로 디디는 듯 겸허한 모습이다. 그런 톨스토이를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레핀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천재였고, 러시아의 역사와 가치를 정교하게 기록한 역사가였으며, 톨스토이처럼 흥미진진한 서사를 캔버스에 펼쳐낸, 또 다른 의미의 작가였다.
레핀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리고 그의 모델이 된다면, 인생의 여정에서 어떤 순간이 담기길 원할까. 나 또한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이, 어떤 감정의 기억 (emotional memory)으로 그의 화폭에 남겨지길 바라는지,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한국산문 3월호, 2021>
박진희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