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샤의 퀼트

 

박진희

 

  결혼한 신부로 미국 땅을 밟고 한참 동안 나침반 없이 허우적거리며 헤매는 기분이었다얼마나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 혼미해질 무렵내게 손을 내밀어 준 길잡이가 있었다교회에서 취미 활동으로 퀼트를 가르쳐주던 아름다운 금발의 페트리샤그녀는 신혼 시절부터 침실을 퀼트 방으로 개조해서  만큼 일찍 바느질과 재봉틀 능숙했다수십 년간 퀼트 작품 뿐아니라 디자인 책도 발간하고, 대회와 페스티벌에서 수많은 상을 받은 실력자였다페트리샤는 첫번째 유방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나를 그녀의 세계로 초대해 주었다.

 

 빅토리아 양식인 페트리샤의 집은 작품으로 가득 채워진 퀼트 미술관 같았다.  거실  벽을 차지하는 가로 4m, 세로 3m 되는 대형 작품에 압도되고 말았다.  연한 파스텔 계통의 연속적인 패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색상으로 배치되어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이닝 룸에는 화사롭지 실용적인 접시받침의 작은 작품들이 있었다. 부부 침실과 손님방, 그리고  딸의 방에는 사랑스럽고 환한 색의 침대보가 무척 세련되어 한참동안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벽에는 벽걸이가 그림으로 보는 풍경화나 정물화 이상의 독특함과 우아함을 뿜어냈다.

 

3층에 위치한  트인 그녀의 퀼트 방은 화가의 아틀리에  이상이었다 편엔 색색의 옷감이 켜켜이 정돈되어 있고사이즈별 바늘과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갖가지 스텐실과 솜들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최신식 재봉틀과 다리미들어느 방향에서도 바느질이 가능한 커다란 퀼트 나무 프레임이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페트리샤는 특별한 디자인에 따라 바느질로 하기도 하지만대체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재봉틀로 완성했다.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그녀는 스테인드글라스 스타일로 커다란 창문 모양의 프로젝트가 한창이었다마치 검은색 창틀 밖으로 빨간색 꽃과 나뭇잎 사이로 낮은 산들과 강물 위의 다리가 멀리 보이는 풍경이었다그림으로는 2차원에서 그치겠지만 정교한 디자인으로 차원의 시각을 패브릭으로만 표현이 가능한 도전적인 시도였다스테인드글라스는 다양한 색유리로 모양을 내고 다듬어 납을 녹여 연결한다검정색 천이 마치 납처럼 색색의 여러가지 모형의 천조각을 이어서 일일이 감싸야 하는 공간이  개도 넘어 보였다섬세하게 처리해야 하므로 무척 시간이 걸리고 까다로워 보였다.  “아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어작업하다 보면 아픈 줄도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페트리샤는 퀼트 만드는 순서와 최소한 필요한 재료를 알려주고 내용이 적힌 폴더를 건네주었다그리고 질문이 있거나 필요한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며특별히 아끼는 다른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모두 어디선가  듯한 디자인이 전혀 아닌 그녀만의 여러가지 특이한 기법이 수십 년 간의 열정으로 가득.

 

 페트리샤의 영향으로 그렇게 퀼트를 시작하게 되었다일단 화사한 색깔의 작은 소품으로 시작해서 은은 색으로 큼직한 벽걸이도 만들었다그러다가 누가 만들어 놓은 패턴을 따라 하기보다는 개성 있는 작업이 하고 싶어졌다특히 아미시 (Amish) 퀼트에서 주로 보이는 와인색과 녹색을 주로 가장자리에 프레임처럼 두고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은 소녀가 꽃바구니를  그림을 확대하여 9개로 배치했다한정된 색상이기에 중복되지 않도록 색상을 최대한  안에서 변형했다 조각들을 일일이 손으로 이어 붙여 앞면을 완성했고 중간에 퀼트 솜을뒷면엔 초록색의 천을 대고     꿰맸다입체감을 주기 위해 꽃바구니의  자수를 놓다 보니 6개월이나 걸렸다가로 2m 세로 3m 이르는 천을 모두 손바느질로 홈질하면서 주로 쓰이던 오른쪽 엄지와 검지는 어느덧 지문이 없어지고 딱딱한 못이 박혔다허리가 뻑적지근하고 눈도 침침해졌지만 눈에 보이게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 가슴이 뛰도록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재봉틀이나 어느 기계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완전 수공이었으나 사이즈가 크다 보니 평평한 탄력이 붙지 않았다그래도 완성품이라고 페트리샤에게 보여주었더니 나의 노력을 기특해하며 생각지도 않던 퀼트쇼에 출전시켜 주었다전 세계 퀼트인들의 작품이 3일에 걸쳐 전시된  대회에서 페트리샤는  작업하고 있던 스테인드글라스 퀼트를 내어 대상을 받았다놀라운 색상정교함상상밖의 이미지현대적이고 추상화적인 crazy quilt까지 대단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고 아름답던지 황홀 지경이었다중에 나의 퀼트는 주눅이 들어  늘어져 보였다하지만 그녀는 내게 용기를 주고 문하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훗날 페트리샤의 유방암이 재발되었다는 소식을 그녀가 다른 도시로 이사가고 한참 뒤에 듣게 되었다두 번째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남편과 킬로만자로 등반을 떠났단지금쯤 그녀는 어디에서 어떤 퀼트를 만들고 있을까. “행복과 고통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시련도  무늬의 재료가 되어마침내 무늬가 완성됐을  우리는 기뻐하게 된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 대사가  생생하다그녀가  주는 두려움에도 당당하고 세상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창의성과 정열 깃든 최고의 퀼트를 만들어낸 비결을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조각보가 이어져 독특한 퀼트가 완성된다퀼트는 어쩌면 우리네 인생그리고  세상의 완벽한 메타포가 아닐까어떤 색상의 어떤 무늬를 이어 나갈 것인지 고민하며서툰 바느질의 연속이었던 삼십대와 사십 즈음이었다극도로 혼란스럽던  시절페트리샤의 퀼트를 만나지 못했다면나는 아직도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것이다덕분에 오늘도 완성품을 기대하며 나름의 무늬를 만들어 어제와 내일의 조각을 이어간다.    

 

<2021년 6월 25일, 미주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