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박진희

 

 

 어마어마한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진퇴양난으로 선택한 서바이벌 게임. 유혈이 낭자하며 욕설이 난무한다. 아비규환 끝에 다섯개의 게임을 마친 ,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선으로 연결된 오징어 게임 마지막으로 오직 사람만 살아남는다. 거기 참석한 한사람 값이 1. ‘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모든 456명의 돈을 차지한다. <오징어 게임> 내용은 이제 어디서나 찾아볼 있다.

 

세상에 나오기 까지 10년이 걸렸다지만  2주만에 세계에서 역사상 최고로 많이 드라마, 90개국에서 1 시청률 확보, 에미상 후보자격까지 획득했다고 한다. 덕분에 넷플릭스의 주가가 사상최고가를 기록하고 세계적으로 휩쓰는 한국의 인기는 모두에게 예상밖이다. 최상으로 치솟는 ‘K-콘텐츠 위풍에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아카데미상의 <기생충> 이어 획기적이며 세상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솔직한 얘기를 좋아한다. 특히 삶의 불평등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아쉽게도 다른 나라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에는 여간해서 찾아볼 없다. 하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대담하게 치부를 훤히 드러내어, 놀랍게도 자신을 대변해주는 감동으로 다가갔다. 사회적 지배자와 지배당하는 사람들, 있는 자와 없는 , 자본주의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지나치게  불편하고 껄끄런 관계층에 공감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로 비집고 들어와 내가 어쩌다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상상하게 만든다. 팬데믹에 직면하면서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부쩍 피부로 절감하는 죽음의 두려움 때문일까. 극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응원하게 된다. 스토리의 진행이 몹시 빨라 이미 죽은 사람들을 동정할 겨를도 없다. 정신없이 새로운 게임이 전개되면서 다음편이 궁금해져 인종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 중독성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정서가 깊이 담긴, 가족을 위해 희생하거나 자기 삶의 몫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과 주위사람들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이 짙다.    

 

SNS 유투브에서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초록색 체육복,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번호가 달린 셔츠를 입거나 강아지에게 입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게임은 ‘Red light (빨간 신호등이라 멈춤) Green light’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미국에서는 게임의 영희로봇 인형이 없어서 팔고 달고나과자도 출시되자마자 품절된다고 한다. 뽑기에서 모형을 빼내기 위해 드라마에서 것처럼 혀로 핥거나 바늘을 사용하는 패러디를 보여준다. 그렇듯 한국문화에 그들은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동참하며 즐거워한다. 게다가 중년의 부부가 하이틴 자녀들이나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본다고 한다. 비디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장년과 노년층과는 달리 젊은이들은 게임의 특성을 이해한다. 그들에게 게임은 게임일 이라서 유행처럼 번지는 공감대를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수영장에서 줄다리기 등을 하며 유대감을 신나게 즐긴다. 이젠 동그라미와 네모가 있는 신기한 한국어에 한층 흥미를 가지고 한국어학과에 학생이 미어지고, 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가 점차 늘고 있다.

 

어릴 놀이를 회상하게 된다. 운동장이나 골목에서 몰입하던 남자들의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여자들이 즐기던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 놀면서 흔히 말하고 듣던 죽었어!’ 스크린에서 비유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보여지자 모든 신경과 감각이 경직된다. 줄다리기와 징검다리 건너기 장면에선 몸이 긴장되며 진땀이 난다. 단순한 선을 넘어 동그라미, 세모, 네모에 마구잡이로 빠져든다. 각이 많을수록 지위가 높은 보이는 짙은 핑크 유니폼의 가이드들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 기하학적 형태의 가면을 프론트 또한 윗사람을 섬기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그리고 포유동물의 황금색 가면을  VIP들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원초적이며 오만하고 가장 비인간적이다. 돈이나 명예면 뭐든지 원하는 가질 있다고 착각하는 가증스러움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임을 게걸스럽게 바라보는 그들은 탐욕때문에 다른 사냥을 위해 재빨리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게임을 하는 자들은 잔혹한 적자생존의 상황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 깊은 대화를 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것은 마치 씹을수록 느껴지는 오징어 특유의 맛처럼 쫀득하게 다가온다.   

 

필요 이상의 돈은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 때문에 신드롬을 절대로 가볍게 여길 없는 것이 아닐까.   유혹적이고 혹독한 게임을 통해, 역설적으로 승부에 집착하거나 승리하지 않아도 행복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있었다. 그로 인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는 것이 <오징어 게임> 발휘한 한국문화의 아닌가 싶다.

 

 

 

<한국산문> 1월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