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은

박진희

 

 죽음이 다가오는 환자를 어느 정도는 알아챌 수 있다. 코마상태가 길어지는 경우엔 소변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온몸이 붓기 시작하거나 피부가 짙은 보라색을 띠기 시작한다. 가족이나 지인조차 찾아오지 않는 의식불명의 환자는 좀 더 빠르게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 의료진이 온마음과 몸을 다해 치료를 시작하지만 몇 주가 걸려도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대체로 중환자실에서 다른 병실로 옮겨져 버린다.

 

 그렇게 된 경우의 John이란 환자가 있었. 온몸의 문신이 튀어나와 살아 날뛰며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았다. 큰 키에 근육질 몸매의 30대 백인 남자. 숨은 쉬고 있었지만 뇌사상태여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방에서 수액주사가 끝났다는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연신 울렸으나 그의 간호사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 환자 옆방이라 자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면서 그가 곧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간호사가 아니어서 병원에서 봉사하는 신부님이나 종교인을 요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를 부르는 듯한 직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의 방에 들어서자 사탄을 숭배하는 듯한 문신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나 연인은 알고 있으려나? 아마 아무도 모르니까 이처럼 혼자 있겠지. 누군가 찾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텐데... 오랫동안 노동을 했는지 굳은 살이 박인 큰 손의 두툼한 손가락사이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그의 손을 잡자 나도 모르게 그를 대신하는 기도가 흘러나왔다. “지난 날의 잘못과 죄를 회개합니다.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영접합니다. 불쌍한 저를 받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음날 그의 방은 비어 있었다.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다른 간호사의 환자차트를 보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참았다. 그와 이별은 이미 어제로 끝났으니까

 

 스쳐간 수백명의 환자와 황망해 하는 그들의 가족들을 대하는 경우, 위로조차 어렵고 아리다. 남동생이 동성애자로 약중독으로 깨어나지 못하자 모든 것을 내게 퍼붓고 원망하는 젊은 누나의 표정. 추운 밤에 거리를 나가 헤매다 쓰러져 병원에 오게 된 아버지와 딸이 서로 욕설을 퍼붓던 아우성 소리. 남편에게 화가 나서 자신의 오른쪽 얼굴에 권총을 쏴 얼굴이 축구공보다 더 부풀고 눈이 밤송이처럼 튀어나온 중년의 여인,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던 남편의 시선환자들의 죽음을 직면한 가족들의 삶의 무게가 날 바닥으로 사정없이 짓눌렀다. 오랫동안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온 몸이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졌다. 그 병원에서 헤어나오게까지 거의 9년이 걸렸다.

 

 지나버린 간호사 시절엔 낮아져야 높은 곳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저 살아내는 일에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기도가 절실했다. 그러다 차츰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한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들의 회복이 나의 기쁨이고 그렇지 않게 되면 힘겹게 하나가 되는 절박함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John의 큰 손을 잡고 기도하던 순간 그는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 시간이 여전히 맴돈다. 이 세상에서 저 세계로 가기까지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