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작가는 거인이다

 

박진희

 

 지난 가을에 <객주>의 작가를 만났다. 청송의 폐교된 한 고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객주문학관에서 만난 그는 키가 180 cm 넘고 몸집 뿐 아니라 품성이 담긴 그릇도 커 보였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9개월간 한 신문사에 연재된 조선말 천민으로 살았던 보부상들 이야기로 단행본은 9권이다. 그리고 30년 만에 대하소설답게 10권을 몇 년 전에 펴냈다. 그 소설은 만화와 드라마로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서 왠만한 작가중에 그가 사준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소문이 사실인 걸 곧 알게 되었다. 본인은 막걸리만 마시면서 배포도 커서 밥 뿐 아니라 술도 사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남모르게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써야 집에 가는 성싶다. 금방 만났는데도 솔직한 직구에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깊은 외로움 때문에 글을 쓴다는 그는 숲처럼 사람들을 편안하게 안기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 지금의 모습과는 상상밖으로 아주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워 스트레스를 받아 오줌 지리는 아이였다고 고백한다.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엄마와 살던 얘기는 그의 단편소설 <멸치>와 장편 <홍어>에 어렴풋이 나타나 있다. <도둑 견습>에서처럼 그는 의붓아버지에게 인정받으며 소년시절을 가까스로 보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출해서 안동의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장학금을 주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 한문을 가르쳐주던 스승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 그가 쓰는 한자는 모두 장인에게 배운 덕이라고 한다. 자신이 가난하고 천한 출신이라 장모는 결혼해서도 끝까지 반대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예를 지키고 모셨다고 한다. 아내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소설을 쓰려고 밖으로 도는 그와 평생을 해로하고 있다

  김주영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상상력의 게으름과 상식에 매몰되는 일이다. 무슨 말일까? 모든 이들이 알아야하는 지식이거나 공감할 수 있는 견해가 상식이라면 그것에 눈멀지 말고 상상력을 한껏 동원하라고 당부한다. 그의 뽀송뽀송한 에피소드 중에 두 개만 소개한다. 한 신사가 창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하루의 반은 옷을 입고 반은 벗고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틀에 박힌 몸 팔고 삽니다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다음 얘기는 이렇다. 남자가 도넛을 먹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가 접근하더니 옆에 놓인 남자의 도넛을 먹는 게 아닌가. 사이좋게 두 개를 먹고 나머지 하나를 노숙자가 반으로 잘라 남자에게 건네어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 하지 않으려 했다. 노숙자가 가버린 후 남자는 자신의 가방 바닥에서 도넛을 발견한다. , 이런! 실수로 노숙자의 것을 먹어버린 남자는 직장을 관두고 노숙자를 씻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 봉사는 상식을 넘는 일이다. 김주영 작가는 지금 그런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확신이 없어 거짓을 쓸까 두려워 글을 못 쓰고 있다고 한다. 그의 솔직함이 자석처럼 바싹 잡아당긴다.

 

 “내가 날 모르는데 누굴 알겠는가? 내가 누구인가?” 잠이 안 올 때 생각하며 옛 것은 잊어버리는 게 작가의 건강비결이라고 밝힌다. 워낙 겸손한 그는 사실 객주문학관을 짓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주왕산이 코 앞인 청송에서 품은 예술인을 자랑스럽게 여겨 당시의 청원군수가 밀어 부쳤단다. <객주>의 등장인물로 여겨지는 커다란 짐짝을 등에 메고 있는 보부상과 아이를 업은 아낙네가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석고상이 정원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온갖 고통과 외로움이 짐이 되어 마음에 품고 사는 상인들의 모습이 작가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옛 보부상들의 후예를 찾아 그들이 썼던 자료와 순수 한국말을 알아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한국의 장터를 구석구석 찾아서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역사적 구현을 위해 사람들과 술 마시며 대화하고 글을 쓰다 지쳐 큰 몸을 웅크리고 자는 작가의 모습을 재현한 문학관의 석고상은 애잔해 보인다.

 하지만 전시품 중에서 그가 사용한 잉크 펜들과 깨알 같은 글씨로 촘촘하고 정갈하게 담은 숱한 그의 노트북은 완전 반전이다. 컴퓨터가 아닌 인간이라 가능한 필기법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써넣은 글자가 3mm정도로 작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니 어떻게?”란 질문에 그는 모두 담기 부족해서그랬다며 천진스런 미소로 답한다. 문학관에는 전시관, 세미나실, 집필실 뿐 아니라 방문자를 위한 안락한 숙소도 마련되어 있다.

 가까이엔 연꽃이 가득한 작은 호수가 있고 그의 어머니가 평생 일하던 진보장터는 여전히 북적거리고 건재하다. 거기서 몇 미터만 가면 그의 생가를 재현하면서 새로 건축한 앙증맞은 문학마을이 있다. 그 중에 감나무가 있는 아담한 집에 일년 중 몇 달을 거주하며 주로 밤부터 새벽 3시까지 집필도 하고 늦은 아침부터 문학관에 찾아오는 문예인과 학생들을 반긴다.

 

 터줏대감인 그가 소개한 큰 바닷게와 특별 해장국도 정신없이 맛나게 먹었다. 주먹보다 크고 아삭거리며 달콤한 청송사과를 우송 받아 가족들과 나눠 먹던 맛의 추억이 지금도 들뜨게 한다. 청송에 다녀간 작가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거기서 돌아와 며칠 후 인사동에서 동행했던 작가들과 만남에서, 그는 아내가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머물면서도 급격히 변화하는 도시를 무척 낯설어 했다.

 수십년간 한국문학의 거장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써낸 김주영 작가는 긴 그림자를 드리며 어디선가 걷고 있을까. 외로움이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그는 지금 무엇을 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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