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예수는 없다 읽고 / 이정호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오강남 교수는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예수는 없다라는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여 진정한 예수를 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 2 바티칸 공회의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하였다고 한다. 1997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으로 새로 선출된 핍스라는 분이 기자 회견을 가졌는데, 거기에서 자기는 예수에 대한 전통적 교리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오강남 교수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문자주의에서 일단 해방되어야 한다고 한다. 문자주의에서 해방될 자연스럽게 더욱 깊고 의미 있는 신관이 생길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성경에는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았고 일부다처제를 용인했을 아니라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야 하고 교회에서 조용하라고 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성차별을 해야 마땅한가? 이런 질문에 그건 그렇지만----“하는 사족을 달려고 하는 마음은 벌써 성경 그대로 아니라,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는 잔인하신 하나님, 가나안 정복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중에 있는 것을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였다는 사실이다. 성안에 있는 생명이란 생명은 모조리 죽여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치고, 결국은 마저도 불태워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구약성서의 레위기에 21 16-2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그가 신학교 시절 배운 한가지 사실은 역사적 예수였다.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예수님의 믿음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이런 저런 교리나 이론을 무조건 믿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믿음, 예수님이 지니고 계셨던 마음을 알고 우리고 그런 믿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서강대 종교학 길희성 교수와 생각이 같다고 하면서 그의 글을 인용한다.  길희성 교수는 말한다. 예수가 ,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다고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예수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기를 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자기 마음 속에 실현하고 나아가서 평화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실현해야 한다. 교회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 존재한다.

 

  오강남 교수는 책에서 진정한 예수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예수의 믿음을 가지라고 한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교리를 만들었으며 우리는 교리에 치중한다고 한다.  예수의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이 믿었던 , 생각했던 , 실천했던 것을 따르려고 힘쓴다고 말한다. 책은 기독교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