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 이정호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하러 갔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국제신지학협회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한 때 그녀의 연이이기도 했던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났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종교의 융합과 통일을 목표로 하는 신지학에 속해 있었고 20세기 전반을 미국과 유럽에 머물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가 신지학에 바탕을 둔 글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유니테리언 교회 모임에 스코트 니어링이 강연을 왔는데 거기서 헬렌 니어링은 그를 만난다. 비슷한 생각을 가졌고 같은 채식주의자인 그들은 점차 사랑을 싹트게 된다.
스코트는 대학교수였는데 그 교수직을 유지하지 못했다. 펜실베이니아 정미소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의 노동상황에 대한 조사는 스코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는 여가와 학식이 있는 교육가로서 세상에 빛을 지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말해야만 했다. 스코트는 입법과 여론으로 아동노동의 폐해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길을 찾고 있는 펜실베니아 아동노동위원회에 참여했다. 스코트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 1915년 대학에서 내쫓겼다.
스코트는 사회의 의무를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그들의 생계를 꾸려가야 했고 그들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그들은 버몬트 숲에 둥지를 틀었다. 스코트는 헬렌에게 삽이나 톱, 도끼 같은 연장을 다루는 법과 농장 가꾸기, 산림 관리, 집짓기, 돌 다루는 일같이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낯시간에 동시대인이 쓴 책과 저자들,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책들을 같이 읽었다. 저녁때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없이 훌륭한 고전들을 들고 불가에 앉았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읽으면 다른 사람은 강낭콩이나 완두콩을 까거나, 스프나 사과소스 만들거나, 뜨개질 또는 바느질을 했다.
그들은 또 일종의 음식에 대한 방학기간으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열흘 동안 단식을 했다. 그들은 그 기간에 물만 마시고 지냈으며 일도 줄였다. 그들은 금욕 기간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그것이 육체와 정신에 이롭다고 믿었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을 얻었다.
그들은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왔으나, 1950년대 초에 이르러 그들이 살아온 외딴 계곡이 빠르게 세상을 닮아갔다. 전에 살던 이웃들이 새 이주자들에게 집을 팔아 휴가철의 숙박지나 별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새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맥주 파티를 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곳 메인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약속을 하고서 또는 불쑥 들르는 많은 방문객들을 날마다 접대했다. 방문객들은 스스로 문명에서 물러난 생활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해온 이 기이한 늙은 부부에게 끌렸고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먼 거리에서 여행해 왔는데 자기 눈으로 조화로운 삶을 보기 위해 심지어 인도,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왔다.
그들은 일은 나누어 했다. 헬렌은 집안일을 맡아 꾸려나가고, 스코트는 농장과 바깥일을 했다. 또 그는 집안일을 돕고 그녀는 바깥일을 도왔다. 그들은 호흡이 잘 맞았다. 예를 들면 그들의 마지막 돌집을 짓는 공동작업에서 그녀는 돌을 고르고 쌓는 일을 했고 그는 콘크리트를 섞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해주었다. 자신의 생활방식에 낙담한 어떤 처녀에게 헬렌은 프랭크타운샌드의 땅에서 구절을 뽑아 보냈다.
“당신이 만족스럽지 않고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세상은 당신이 그다지 크게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조금씩 자기 주위환경과 조화를 이루어가도록 성장합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줄여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입니다.”
스코트는 점점 나이가 들어 갔으며 그는 자기 힘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가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기를 원했고, 의식을 갖고 또 의도한 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 협조하면서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는 죽음의 경험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꺼이 그리고 편안하게 몸을 버리는 기술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기대했다.
스코트가 좋아하는 우화에서 죽음에 대해 말한다. 나는 바닷가에 서 있다. 내 쪽에 있는 배가 산들바람에 흰 돛을 펼치고 푸른 바다로 나아간다. (…중략…) ‘저기 봐! 배가 사라졌다!’고 당신이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다른 쪽에서는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스코트가 가기 한 달 반 전인, 그의 100세 생일 한 달 전 어느 날 테이블에 여러 사람과 앉아 있을 때 그는 말했다. “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딱딱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는 신중하게 목적을 갖고 떠날 시간과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스스로 육체가 그 생명을 포기하도록 하는 자신의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헬렌은 스코트의 침상에 같이 있으면서 조용히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헬렌은 반쯤 소리 내어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는 천천히 천천히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하는 듯이 “좋 – 아.” 하고 하며 숨을 쉬고 나서 갔다. 헬렌은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갔음을 느꼈다.
그들의 사랑은 반 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스코트가 백 살로 죽은 지 8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헬렌은 내 쪽의 사랑이 계속되고 있고, 그이 쪽도 그렇다고 믿는다.
헬렌이 스코트에게 주고. 또 그이에게서 받은 사랑, 그리고 헬렌이 아는 수많은 여성, 남성들과 주고 받은 사랑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사랑한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다. 모든 나이, 장소, 시간에서 느껴온 사랑이 빛나고 있지 않은 가! 영원히 진행되고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고, 완성의 도구이다.
사랑에 참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보답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100세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평화롭고도 위엄을 간직한채 맞이한 스코트의 죽음이 고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식도 일종의 자살이지 않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귀한 생명을 명을 다 할 때까지 우리의 의지가 아니고 하늘에 맡김으로써 생을 마무리 해야 되지 않을까. 스코트가 죽어간 방법이 위엄있는 고귀한 죽음일까.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제가 존경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한때 연인 이기도 했던 헬렌 니어링의 삶이 제가 지향하고픈 삶이기도 한 것 같아요.
스코드 교수님의 삶도 존경스럽습니다.
나눔,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