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수다 / 김경순

 

 

 

 

 

또 한 발 늦었다. 어지간히 서둘러 와도 그들을 이길 수 없는 요즘이다. 아는 척은 않지만 매일 같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있기 마련이다. 슬쩍 둘러보니 어제의 그 얼굴들이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목소리를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이곳이 자신들의 전유물이기나 한 듯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나의 목표 지점은 산봉우리 못 미쳐 큰 나무들에 가려진 비탈진 쉼터이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삼거리를 벗어나 봉우리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상수리나무 아래 한적한 벤치 몇 개가 놓여있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무념무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로부터의 탈출이요 억지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자연과 교감하는 묘미에 아침마다 등산화 끈을 묶곤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다른 이의 눈에 들키기 마련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그 자리를 다 차지한 채 끝도 없는 수다삼매경에 빠져있는 것이다. 곧 자리를 뜨겠거니 하고 기다리다 보면 먼저 지치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남편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집을 나서도 좀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저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굵고 크다.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더 커지는 법인지 산은 온통 그들의 수다 소리로 채워진다. 무심함을 가장한 채 귀를 세우고 듣노라면 세상의 중심에서 비껴나 이제는 변방으로 내몰린 가장들의 몸부림인가 싶기도 하다. 그 소리들은 비장하다가 서글프다가 결국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좀체 떠날 기미가 없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비스듬히 놓인 운동기구에 거꾸로 매달려 본다. 허락 되지 않는 고요가 못내 아쉽지만 이 산이 내 것이 아니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저렇듯 남자들이 한 무리씩 늘어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선에서 물러난 가장들이 운동 삼아 모여들기 좋은 곳이 산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던 동네 산이 요즘은 온통 남자일색이다.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얼굴들이 대거 출현한 것은 더욱 특이한 양상이다.

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보니 저 왕성한 수다의 진원지가 궁금해진다. 한 시절 다 바친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물러나오고 보니 설 곳이 마땅치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늙은 가장들은 자꾸만 산으로 모여드는 것일 터이다. 막걸리 한 잔으로 세상 이야기를 한껏 풀어내는 데는 산에서의 한 나절보다 더 적절한 시간이 없을 것이다. 흐트러진 심신을 추스르고 아무도 몰래 스스로를 위무하며 당당한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연출하기를 반복한다.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휴식기에 접어든 그들, 그래서 충분이 이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노년기에 찾아든 허허로움을 감추려 저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 이야기에서부터, 여행 경험담, 흉인가 싶으면 결국 자랑으로 이어지는 자식들 이야기까지 무궁무진한 레퍼토리는 끝이 날 줄 모른다.

남자의 위상은 무릇 점잖고 과묵할 때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다. 한 세상 그 틀에 맞춰 살아왔다면 이제는 남자이기 전에 보통의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분출되는 나이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남자답게 사느라, 무게를 잡느라 참고 눌러왔던 포화상태의 언어들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랴.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수다꾼이 되어 가는 한 사람이 있다. 퇴근 후, 식탁에 앉자마자 시작되는 대화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말하는 것이 귀찮다고 할 정도로 과묵했던 예전의 성격은 찾아볼 수가 없다. 화제를 꺼내는 것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요, 적당한 타이밍에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은 내 몫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대사 분량은 점점 방대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수다의 역할이 뒤바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진중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런 남편이 여럿 모이면 산위의 남자들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도 일선에서 물러나면 저처럼 충실히, 밀도 있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것이 뻔하다.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고도 격정적이다. 그것이 자존감을 확인하는 그들만의 방식일 거라고 생각하니 애잔해지기까지 한다. 

늙고 주름진 눈언저리에 변방으로 물러나온 자의 쓸쓸함이 고여 있다. 한때는 세상을 겁도 없이 질주하던 빛나던 청춘들이 아니었던가. 잃어버린 젊음을 부여잡은 채, 위태로이 서 있는 외발의 열정이 눈물겹다. 이제야말로 쌓이고 억눌려 있던 온갖 감정이 말이 되어 튀어 나올 때임을 인정해야겠다. 노장의 퇴장을 위해 기꺼이 멍석을 깔아주는 푸근한 산이 있어 참 다행이다.

부드러운 가을볕이 그들의 어깨 위로 쏟아진다. 끝나지 않은 수다가 햇살을 타고 세상 속으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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