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열매 / 오신혜 - 제12회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대상
"탁!" 사납게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어두워졌다. 할머니께서는 혀를 끌끌 차시며 방문을 매몰차게 닫으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둠 속에서 귀를 쫑긋하던 나는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에 다시 전등을 켰다. 할머니께서 늦은 밤 몰래 독서를 하는 내게 역정을 내신 것은 '여자'가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남자나 보는 귀한 책에 여자가 손대는 것을 몹시 노여워하셨다. 할머니에게 여자란 그저 남자를 돕는 존재였다. 동생이 가운데 토막을 먹고 난 생선을 물려받아 밥을 먹고, 동생이 쓰다 버린 학용품을 물려받았던 것도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게 여자의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어디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 학비를 벌라는 이야기도 매일 들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차별하며 키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 집은 무척 심한 편이었는데 할머니는 공부나 책과 관련된 일에 특히 더 엄격하게 우리 남매를 차별하셨다. 여자가 공부한다고 설치면 남자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인 우리 아버지 하나만 보고 청상과부의 삶을 견디셨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서른이 되기 전에 사고로 비명횡사하자, 집안에 하나 남은 남자인 내 동생이 할머니 삶의 등불이 되었다. 동생에게 안 좋은 것이라면 티끌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고아가 된 동시에 철저히 동생을 위한 그림자가 되었다. 오로지 동생 하나 잘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할머니께서 장사를 하실 동안 집안일이나 동생 수발드는 것은 모두 내 차지였다. 남동생에게 마실 물까지 떠다 주는 신세였지만 내 마음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었다. 책이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그림자도 아니었고, 부엌데기도 아니었고, 차별받는 여자애도 아니었다. 독서를 하는 동안만큼은 다채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탐험가이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동생 교복을 한 장 더 다리라는 말씀으로 매번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셨다. 그래도 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얻는 위안과 기쁨을 나 같은 아이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에게 교육으로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학교를 다녀야 했다. 매번 진학을 할 때마다 나는 할머니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한 달이 넘도록 나를 모른 척 하셨다. 대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호적에서 파겠다는 하셨는데 친척 어른들이 모두 오셔서 말린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떻게든 배워야 했기에 그야말로 목숨 걸고 공부했고 매 학기 장학금을 받았다. 덕분에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또래들은 독하고 강단 있는 내 모습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전혀 기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나를 잡초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거절감과,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고 있다는 자존감은 속에서 나를 파먹는 괴물과 같았다. 괴물이 기승을 부릴수록 나는 끈질기게 책을 붙잡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처럼 느껴졌다. 내 자신이 거친 자갈밭을 구르는 볼품 없는 잡초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교육대학원에 진학했을 무렵, 할머니께서 갑자기 이상해지셨다. 저녁 8시가 되면 나와 동생에게 학교 가라고 재촉하셨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는 것을 잊으시는 일도 잦았다. 어떤 날은 화장실 문을 여는 법을 잊어버리셔서 몇 시간을 나오지 않으신 적도 있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할머니께 치매 진단이 내려지자, 나는 휴학계를 냈다. 동생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내가 집에서 할머니를 모셨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 같아지신 할머니가 때로는 가슴이 에일 듯 애처로웠지만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하실 때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이 나빠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눈빛도 부드러웠다. 나는 그 짧은 순간,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로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오백원짜리 세 개를 내미시며 책을 사라고 딱 한 마디를 하셨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 지나자, 할머니는 다시 병마에 잠식되셨다. 배가 고프다고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를 달래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꼭 쥐고 있는 오백원짜리 세 개에서 오래된 쇠 냄새가 났다. 이 동전을 얼마나 간직하고 계셨던걸까.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은 가치관과 옳다고 믿는 신념 때문에 나를 차별하시면서도 내심 괴로우셨을 것이다. 사실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시고, 지원해주고 싶으셨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잡초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열매였다. 책을 읽기 위한 사투 역시 반항이 아니라 수련이었다. 아들내외가 남기고 간 손녀손자를 거두시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없이 굳세게 살아오신 할머니. 그런 할머니께 성실함과 끈기라는 자질을 물려받아 크고 단단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비록 내놓고 나를 지지하진 못해도 속으로는 대견해하셨으리라. 가장 반짝이는 별도 낮과 밤을 겪듯 할머니의 양육은 내게 어둠이면서 빛이었다. 덕분에 나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될 수 있었고,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내가 좋아하는 책을 조금씩 읽어드렸다.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시다가도 책을 펼치면 얌전해지셨다. 내가 해묵은 감정을 해결하고 나를 열매로 여기게 되자, 할머니는 마치 할 일을 다 하신 것처럼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유수처럼 세월이 흘렀다. 우리 남매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나는 얼마 전 아이를 가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랬듯 뱃속의 태아에게도 매일 책을 읽어주고 있다. 할머니가 내게 주신 반들반들한 윤기를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책을 읽는 중간중간 할머니 이야기 한 토막도 섞는다. 그러면 아이는 마치 대답을 하듯 배를 툭툭 걷어찬다. 나처럼 아이도 우리 할머니의 열매로 영글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