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대한 소고
이경구
까치골 노인은 우리 관객들에게 고려 때에 재상을 지냈던 이규보(李奎報)의 묘를 가리키며 대시인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규보 선생은 문한직(文翰職)에 있으면서 몽골에 보내는 외교 문서, 교서, 제문 등을 지었다.
고려 말에 임금이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복을 입고 야행을 나갔다. 날이 저물어 산중을 헤매는데, 어떤 초가집에서 불빛이 새고 있었다. 그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했더니, 초가집 선비는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이 있다며 청을 거절하였다.
임금이 초가집을 나오는데, 보니 대문에 ‛有我無蛙人生之限’이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뜻인즉슨 ‛나는 있으나 개구리(蛙)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로다.’라는 말이었다. 초가집 선비가 임금에게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고려의 실상을 비유해서 한 말이었는데,
임금은 참뜻을 몰랐다.
임금은 주막집을 찾아가 주모에게 초가집에 관해 물었더니, 초가집 선비는 과거에 낙방한 뒤부터 집에만 처박혀 글이나 읽는다고 하였다. 선비는 백운거사를 자처하면서 시를 짖는다고 하였다.
임금이 다시 초가집을 찾아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하며 글의 참뜻을 물었다. 그랬더니 초가집 선비는 이런 사연을 말했다. 옛날에 꾀꼬리와 까마귀가 살았다. 그들은 목소리가 곱다고 서로 싸우다가 황새 앞에 가서 실력을 겨루기로 하였다. 까마귀는 미리 개구리를 잡아서 황새에게 갖다 바쳤다.
꾀꼬리와 까마귀는 황새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황새는 까마귀 목소리가 더 곱다고 판정하였다. 이규보 선비는 학식이 많았으나 정승의 아들도 아니고 돈도 없어서 과거만 보면 떨어졌다.
임금은 초가집 선비에게 임시 과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임시 과거를 보는 날 시관이 시제를 내거는데, 보니 ‛有我無蛙人生之限’을 풀이하라는 것이었다. 선비는 대궐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일필휘지로 답을 써 내서 장원급제하였다.
까치골 노인은 그 선비가 바로 대시인 백운거사 이규보라고 말하였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에 살면서 이규보 선생의 일화를 관객들에게 들러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 하였다.
세월은 흘러서 우리가 사는 시애틀 남쪽 밀러스 크리크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2009년 4월에 서울을 떠났으니 벌써 6번째 맞는 겨울이다. 12월 7일 진주만의 날(Pearl Harbor Day)을 맞이하자, 나는 서재에 들어가 지난해인 2013년 봄 아내랑 사위네 식구들을 따라 하와이주 진주만을 방문했을 때 산 『PEARL HARBOR, The Way It Was - December 7, 1941』을 꺼내 읽었다.
우리가 애리조나호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가 “우리 애리조나호 기념관은
1941년 12월 7일 일본 비행기의 기습을 받고 바닷속으로 침몰한 전함 애리조나호의
잔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고 소리쳤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우리 일행은 기다란 백색 단층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복도 끝머리의 네모꼴 대리석 벽면에 새겨진 전사자 명단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애독서 표지에는 일본 폭격기들의 폭격을 받고 불덩이에 쌓여 있는, 그 모습은 ‛Death of a Battleship: USS Arizona 8:06 A.M.’이라는 사진이 실려 있다. 전함 애리조나호 속에는 900명의 수병 시신이 있단다.
일본 폭격기들의 진주만 기습으로 그날 죽은 미국인은 모두 2,390명이고 부상자는 1,178명이었다. 그 중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49명이다. 민간인 사망자의 명단에는 ‛Chip Soon Kim’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우리가 묵었던 와이키키 리조트 호텔 앞쪽에는 한반도 모양의 비석이 서 있었고 그 비석에는 서정주 시인이 쓴 “산까치 우지짖는 아름다운 아침 나라”로 시작하는「한국 교포들의 마음」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흰색의 애리조나호 기념관, 와이키키 리조트 호텔, 오도리코 일본 식당, 알로하 아 와이키키 등지를 찾아갔을 때는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에티켓을 지켜서 평안한 여행을 즐겼다. 관광단이 계산대로 가서 더치페이 계산을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일본의 세계 굴지 군사 문제 전문가인 이도 마사노리(伊藤正徳)가 지은 『제국 육군의 최후 진공편(帝國陸軍の最後 進攻篇) 제1권』「머리말」에는 “남의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졌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 같은 책의 『종말편(終末篇) 제5권』 8장 229쪽에는 “패인(敗因)의 하나가 일본의 태평양 전쟁 시작은 대의명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라고 씌어 있다.
애독서 57쪽에는 1945년 9월 2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호(the battleship Missouri) 선상에서 체스터 W. 니미츠 해군 제독(Navy Admiral Chester W. Nimitz, )이 제2차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일본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으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General Douglas MacArthur)이 옆에 서서 지켜보는 사진이 있다.
우리 부부가 이민 온 지 13번째 되던 성탄절 연휴에는 온 마을이 눈으로 뒤덮였다. 나는 서재에 들어앉아 컴퓨터로 본국 소식을 검색했더니,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생겼다.
이 법은 2016년 9월부터 시행되었다. 공직자는 3만 원 이하의 식사, 5만 원 이하의 선물, 10만 원 이하의 경조사비를 받을 수 있다. 1회에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거나 요구하면 벌을 받는다. 추석에 5만 원 미만의 선물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이 법은 한마디로 말하면
더치페이법”이라고 말했다. 이 법을 공부하는 공직자 모임이 생겼는가 하면, 코리안
페이 대신 더치페이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다.
내가 ‛더치페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62년에 서울에서 영어 회화 학원에 다녔을 때였다. 로버트 박(B. Robert)이라는 선생이 저서인『生活 英語 [1]』로 영어 회화를 가르쳤는데, 그 책 219쪽에 “日本人들은 소위 ‛와리깡’ 또는 ‛가부시끼(다 같이 分割해서 내는 것)’를 잘 하는데, …이것을 美國人은 Let’s go Dutch treat.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내 컴퓨터의 ‛Microsoft Bing’에 따르면 “In South Korea, ‛going Dutch’ is called ‛Dutch pay’ (더치페이), a Korean loan phrase.”라는 말이 있다. 영어 사전에 보면, ‛loan phrase’는 차용어(借用語)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 사회에는 부정한 청탁과 불법한 금품 수수 행위가 뿌리 깊게 내렸다. 나라가 이런 그릇된 관행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김영란법’을 제정한 일은 한국 역사상의 쾌거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공직자 들이 법의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국민들이 ‛고맙습니다’와 ‛미안합니다’ 같은 따뜻한 언어를 일상 쓰도록 선도하고, 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에도 유의하여 모범을 보인다면, 선진 사회의 달성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온 국민과 더불어 투명 사회의 건설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김영란법’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2022.4 <한국수필> 통권3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