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 윤정인 - 2021년 평사리문학 대상
찬바람이 어시장을 휘돌고 간다. 시리고 헛헛한 속을 데워줄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참이다. 동태, 대구, 도루묵을 견주다 손질된 아귀가 눈에 들어왔다. 싱싱한 애와 곤, 간과 위 내장도 함께 좌판에 진열되어 있어 보기에도 풍성하다.
겨울이면 어촌에는 아귀가 지천으로 널린다. 한때 동해안 집집의 마당과 옥상에는 오징어가 많이 널렸다. 어느 날부터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자 아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머리 떼어내고 내장을 발라내고 빨래처럼 줄에 널어 반 건조시킨다. 멀리서보면 깃발 같기도 한 것이 무슨 점령군처럼 기세등등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아무도 아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물고기 씨가 마른 요즘에야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다. 거무튀튀한 색깔에 몸체는 두루뭉술한데 험상궂은 머리가 가히 압도적이다. 엄청나게 큰 입에 조그만 눈알을 가져 삼식이와 함께 추한 생선의 대명사로 불린다. 살아있는 아귀는 무시무시한 큰 입을 벌리고 삼중으로 난 날카로운 이빨로 잡아먹을 듯이 성깔을 부린다. 미끌미끌한 점액질 외피에 가시까지 있어 바다의 부랑아답다.
드세어 보이고 우락부락하게 생겨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당차게 헤쳐 나가는 아귀 같은 사람이 있다. 종고모 한 분이 그랬다. 고모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쌍둥이 아재는 생긴 것부터 어리바리했다. 말도 더듬었고 무슨 일이든 어중간하게 걸쳐놓아 늘 핀잔을 받았다. 반면에 고모는 맵고 야무진 게 지나쳐서 악바리란 별명으로 불렸다.
아재의 모자란 것은 고모가 좋은 걸 혼자 다 챙겨가서 그런 거라고들 했다. 고모는 욕심이 많아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었으며 자기 것은 절대로 뺏기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빈틈없으면 무서워서 피하게 된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인근에선 종고모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혼기가 꽉 차도록 장가들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며느릿감 구해달라는 사람들도 고모라면 손사래를 쳤다. 시집 못 가 처녀귀신 될 거라고 쑤군댔지만 고모는 짚신도 제 짝이 있다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쌍둥이 아재가 먼저 장가들자 노처녀 심술에 시누이 짓도 많이 했다. 새언니를 종 부리듯 하니 아재부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천적 없는 아귀도 먹고 사는 일은 버겁다. 날렵하게 헤엄도 못 치고 무리지어 다니지도 않는다. 모래더미나 먼지 덩어리로 보이게 교묘한 위장술을 사용하고 입 위에 난 가느다란 안테나모양의 촉수를 살랑살랑 흔들어 낚시질하는 게 주된 특기다. 흰 피막에 덮인 촉수가 먹이인줄 알고 다가온 작은 고기들을 통째로 꿀꺽 삼켜버린다.
고모가 시집가던 날, 사람들은 신랑의 준수한 인물에 깜짝 놀랐다. 그날만은 고모도 연지 찍은 볼에 귀밑까지 붉어지며 수줍어했다. 아재가 옆 동네 총각을 친구하자고 불러들여서 술을 잔뜩 먹여 자고 가게 했다는데, 이튿날 아침에 고모 방에서 나오다 종할아버지에게 들켰다는 귓속말이 오갔다. 한편으로 고모가 점찍어 짝사랑했다는 말도 들렸다.
아귀는 등 쪽과 달리 배는 우윳빛으로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회갈빛 점액질의 껍질을 한 풀 벗겨내면 발간 속살이 연질의 뼈에 붙어있다. 부들부들 연한 살코기는 찌거나 끓이면 탱글탱글하고 쫄깃해진다. 애와 곤도 생아귀탕 맛을 살려주지만 푸아그라에 버금간다는 아귀 간은 단연 미식가들의 극찬을 받는다.
결혼 후로는 남편에게 지극정성이라는 소문이 흘러왔다. 삼시세끼 더운밥에 고기반찬을 빠뜨리지 않았고, 속옷은 삶아 다림질하고 여름이면 푸새하여 시원하게 입혔다. 입속에 넣었던 것도 꺼내줄 만큼 살가운 아내가 되었다. 고래심줄보다 뻣뻣하고 질기던 고모가 사각사각 단물 흐르는 연한 배가 될지 누가 알았겠냐며 모두들 탄복했다.
고모부에게 결혼은 횡재나 다름없었다. 고모는 남의 집 머슴이나 살던 그에게 택시 운전을 배우게 했고 종할아버지는 택시도 한 대 사주었다. 하루 두 번 다니는 버스를 놓치면 급한 사람들은 고모부를 불렀다. 연중 쉬는 날 없이 영업한 덕에 고모네 살림은 아귀의 배처럼 나날이 불어났다. 모은 돈은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았다. 급전이 필요하면 다들 고모집을 찾았다.
그물에 걸려나온 아귀는 쓸모없어 귀찮다고 뱃전에서 바로 바다로 내던져졌다. 텀벙하고 물에 떨어진다 해서 별명이 ‘물텀벙’이다. 꺽정이, 물꿩, 망청어 같은 방언 이름 외에 《자산어보》에는 조사어(釣絲魚), 속명을 아구어(餓口魚)라 했다. 의도치 않게 낚시에 걸려나오고, 주린 입을 가진 듯 마구 먹어대는 습성을 간파한 이름이다. 아귀는 탐욕이 많았던 자가 죽으면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귀신이 된다는 불교의 '아귀(餓鬼)'에서 유래되었다. 이빨 구조상 한번 삼킨 것은 뱉어낼 수 없는 약점이 있다. 무작정 어구나 그물 조각, 비닐 쓰레기를 삼켰다가 토해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다른 생선들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돈맛을 안 고모는 논이든 밭이든 마구 사들여서 도지를 놓았다. 새언니가 중병을 앓아 가세가 기운 아재의 논을 매입하고는 도로 도지 놓았다. 그러면서 병원비로 일원 한 장 보태지 않았다. 형제에게조차 모질게 하니 무덤에 풀도 안 날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새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재의 논은 도로 돌려주어 파산을 면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악착같은 고모에게도 따뜻한 속정이 있었다며 달리 보았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먹고살만해진 고모부는 노름에 손을 댔다. 한술 더 떠서 인물값 한다고 단골손님이던 과부와 바람이 났다. 고모가 무서워서 소문이 돌기 전에 땅문서며 집문서를 몽땅 챙겨 도망가 버렸다. 모든 재산을 남편 앞으로 해둔 게 실수였다. 고모는 반쯤 미쳐서 수년 동안 고모부를 찾아다녔지만 단단히 숨어버린 그를 끝내 찾지 못했다.
속을 다 꺼내놓은 아귀도 온전히 제 치부를 드러내고 싶진 않았을 게다. 뱃구레를 닫고 어물전 좌판에 엎드려 멀뚱멀뚱 눈알을 굴리고 있다. 어쩌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라도 붙잡고 한 많은 심중을 한번쯤 하소연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풀어내면 소설책 열권은 훨씬 넘는다던 그 파란만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