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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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라면, 분명히 가졌을 법한 두려움이 있다. 바로 '드러남'에 대한 두려움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행위를 묘사하는 동안 혹여나 나의 결함, 예컨대 치졸함이나 궁색함 같은 것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을까 필시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차라리 수필 형식의 글이라면, 나는 '나'라는 사람의 어느 영역까지를 글 속에서 내보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작가들이 흔히 말하듯 소설을 어느 시점까지 진척시키고 나면, 그 다음부터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작가 본인이라기보다도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에 - 내 무의식이 글에 투영되는 것을 온전히 방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참 역설적으로, 소설과 본인의 삶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고 좋아한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녀가 여성주의나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 본인이 평소 약자들을 대할 때 있어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시선에 대한 반성 등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들은 나를 그녀의 작품에 매료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사실 작가라기보다도, '선생님'이라 칭하는 것이 익숙할 만큼 내가 존경하고 동경해왔던 분이다.

박완서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사진 속 싱그러우면서도 안온한 미소가, 선생님의 문체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어 정겹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현재는 북한의 영토인 경기도 개풍군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대표작 중 하나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자전적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어린 나이에 맹장염에 걸리신 아버지를 여읜 뒤 할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나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한방 요법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남편을 살리지 못했다는 반감을 갖고 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딸과 아들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고 싶다며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훌쩍 떠나게 된다. 박완서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지 한달도 안 되어 6.25 전쟁이 발발했다. 그녀는 6.25 전쟁에서, 누구보다도 아끼던 친오빠가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당하고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대학교는 안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박완서 작가는 여성 문인으로서의 공로와 업적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된다) 사실 그녀가 데뷔작인 '나목'을 발표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 결혼을 하고도 17년이 지난 뒤의 일이어서, 가정주부로 살다가 마흔의 나이에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이기에는 너무도 훌륭하다는 평을 곳곳에서 들었다.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많은 평론가들이 그녀의 작품 앞에 붙이는 수식어는 '시대의 아픔'이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테마가 6.25의 아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수식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말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산층, 여성, 아들을 잃은 어머니, 분단국가의 국민 등 그녀의 정체성은 다층적이었으며, 그 다층성은 작품들의 소재 및 구성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커다란 슬픔으로 인해 잠깐 절필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그녀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성실하고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2011년에 별세하셨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여성 문단의 시초'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움을 위하여, 메마르지 않은 삶을 위하여

'그리움'이란 말은 참 애틋하다. 조금 삐딱하게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그 대상이 사람이든, 추억이든 간에 현재 시점에서 그 대상이 부재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인데 - 우리는 왜 그러한 '결핍'을 '그리움'이라는 말로 아름답게 포장하여 쓸쓸해하면서도 애써 즐기는 것일까?

그건 아마 그리워하는 마음이 결코 탐욕스럽게 욕망하거나 무언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쁘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그리워할 때, 우리의 마음은 마치 따뜻한 물로 갓 뎁혀 놓은 수건으로 배를 문지른 듯 아늑해진다. 그러니까 그리움은 자세히 뜯어보면 결핍이 아닌 '충만'에 가까운 것일 테다.

이 단편 소설에서, 아마도 박완서 작가 본인이 투영된 인물일 서술자 '나'는 서울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통영의 작은 섬 '사량도'의 뱃사람에게 시집 간 사촌동생을 그리워한다. 그녀의 그리움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먼저 소설의 전반부를 조금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사촌동생은 어려서부터 '나'에 비해 훨씬 성격이 거침 없는 데가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고 단언하더니 결국 그 남자가 본처와 이혼한 뒤 그와 결혼한다. 하지만 '나'의 말에 따르면 사촌동생이 썩 남자 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그들이 겨우 얻은 집을 빚 보증을 서 날려버렸으며, 이후에도 질병을 앓아 전혀 경제적 보탬이 되지 못했다. 사촌동생은 옥탑방 전세집에서 살면서 서술자의 파출부로 일하게 된다.

 

사촌동생은 파출부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그녀의 손맛은 왠만한 요리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나'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반찬 솜씨에 감탄할 때면 으레 본인의 솜씨인 양 가식을 떨고는 한다. 청소건 빨래건 밀리는 법도 없다. 주인공 역시 사촌동생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커서, 자신이 안 입는 옷들을 모조리 갖다주거나, 선물받고 안 뜯은 고기도 늘 나눠주고, 여행을 다녀올 때면 동생과 동생 자식들의 선물을 잊지 않는 등 늘 베푸려 애쓴다. 그러던 중, 사촌동생의 남편이 질병으로 한참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에, 남편이 그녀의 손목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사랑해'였다. 동생은 그 사실을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다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조금 우습고 속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떠난 후 동생은 힘든 삶을 지속한다. 아주 더웠던 어느 여름에, 그녀는 선풍기 두 대를 틀어놓아도 자는 동안 티셔츠가 땀에 흥건히 젖는 옥탑방의 더위 속에서 몇날 몇일을 신음한다. 그녀의 자식들은 빈 말이라도 본인의 집에 와서 지내라는 말이 없다. '나' 역시 동생에게 잠깐 집에 와 지내라고 할까를 고민하지만, 자식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본인이 나서는 모양새가 이상하다는 판단에 말을 삼킨다. 그 때 동생에게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와서 지내라는 제안을 하고, 그녀는 '나'에게 파출부 일을 잠깐 쉬겠다고 말한 뒤 훌쩍 떠나 그 곳에서 여름을 낸다. 그리고 그 섬에서, 아주 점잖고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누구보다 고기를 잘 잡는 어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img src="http://static.hubzum.zumst.com/hubzum/2019/04/29/13/3e860971823a4f1b93dcf29b02b65829.jpg" alt="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

서술자는, 파출부를 그만두고 '왠 개뼉다귀'의 밥을 해주러 섬으로 가겠다는 동생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본인이 동생에게 해줬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스스로 역겹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종의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곧 자신을 반성하면서, 여태까지 그녀가 동생을 대해 왔던 태도는 '우정'보다도 '상전 의식'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동생이 훌쩍 떠남으로써, 오히려 서술자는 진정한 친구를 한 명 더 얻게 되었으며, 늘 그리워하며 마음 속에서 따스히 간직할 대상도 갖게 된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으므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그 대신 택배로 동생이 분홍빛 도미를 부쳐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中

불편함을 전시할 때 비로소 생기는 소멸의 불씨

짧은 단편 소설이었지만,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왜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애정했는지를 느꼈다.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조악한 마음, 친구가 가진 나와는 다른 특성들 - 예컨대 이 소설에서는 사촌동생의 낭만적이고 충동적인 기질 - 같은 것을 깎아내리고 나의 특성을 합리화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누구인들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질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성 중 하나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 속담이 있을까. 다들 그저 그 마음을 숨기려 애쓸 뿐이다. 하지만 질투심은 땅으로 묻으려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끈질기게 새싹을 피워서, 친구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나의 치졸한 마음을 스스로 혐오하게 만들고는 한다.

 

소설의 서술자는, 소설 후반부에 가서 이러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낸다. 자신에게 여태까지 그런 생각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동생과 맺어갈 새로운 '우애'의 관계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리움'의 가치 또한 깨닫게 된다. 이처럼, 우리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불편함은 도리어 현실에서 고스란히 전시될 때 소멸의 불씨를 갖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나의 내면에만 머무른다면, 불편함은 그 자체로 타오르며 좀처럼 소화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의 매력은, 사람들을 크게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도 비유적인, 혹은 풍자적인 방식으로 내 생각을 개진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들었'다.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팟캐스트의 마지막에, 김영하 작가님이 '작가는 죽으면 책에 묻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작가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책을 통해 그의 숨결을 몇 세기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참 운 좋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비록 한 번 살다가 바람처럼 흩어질 육신이지만, 그 육신이 담지하고 있던 영혼만은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으니까. 박완서 선생님의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엄한 시선이, 그 분께서 세상을 떠난지 아직 채 10년이 안 된 지금 뿐 아니라 앞으로 100년, 200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 문학 전집' 등의 조금은 따분해 보이는 이름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내 영혼을 묻어 놓을 수 있는 책 한 권쯤은 출판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또 바래본다.

 

이창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