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참모습/윤재천

 

  수필은 술이부작述而不作 - 적기만 하고 짓지 않는 사실적 기록이 아니다. 본 일을 그대로 옮겨 적는 르포기사가 아니라, 같은 것을 봐도 자신만의 심안心眼으로 보고 마음의 움직임을 진솔하게 따라가는 글이다. 사실적 기록은 생생한 현장감을 주지만, 걸러내지 않은 목격담은 투박하고 불완전하다.

  

   고택古宅의 누마루에 걸터앉아 그 집의 생성연대를 가늠하기보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한 칸의 작은 방을 보고 그 방의 규모만 짐작할 것이 아니라, 그 방안에서 이루어졌던 담론과 애환에서 역사의 한 면을 느끼고 마음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고택의 방에 들어서면 좁은 사방의 벽에 사고마저 갇힐 듯한 압박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창문을 여는 순간 기우임을 알게 된다. 출입을 할 수 있는 앞문과 생각이 막힐 때 열기 위한 뒷문이 있다. 뒤 창문을 열면 한 그루 매화나 소슬한 대나무와 그 너머로는 뒷산의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멀리 흰 구름 흘러가는 하늘까지 닿도록 분방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가진 것은 한 평 방이지만 사방 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풍광과 소리와 냄새까지 가슴으로 품어 안을 수 있으니, 골방에 앉아 천하를 소유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 내 것이 아니라, 누리고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만큼이냐에 따라 정신적인 풍요를 가늠하게 한다.

  

   골방의 푸근함을 아는 사람만이 너른 마당의 여유를 즐길 줄 안다. 확실한 주관이 있는 사람만이 객관적 진실을 아우를 수 있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다.

 

   폐쇄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전통 유교와 도덕 규범도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한 사고를 갖춰야 한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글은 사념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글의 반향을 의식하고 책임감 있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내 의견을 확실하게 내놓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올곧음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주장들이 충돌할 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창출되며 긍정적 발전으로 이어지므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마당에 기화요초琪花瑤草를 심는 뜻은 혼자 두고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하자는 배려다. 골방에 앞뒤로 문을 낸 선인들은 작은 방안에 온 우주를 담고자 한 원대한 뜻이 있다.

 

   수필도 문을 활짝 열어젖힐 때, 골방은 더 이상 구석지고 어두운 곳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 온 세상을 품어 안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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