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못다 한 종소리의 숙제/유혜자
수필은 작가의 성장 과정과 삶의 도정에서 겪은 이야기와 꿈이 녹아 있거나 변용된 모습이 담긴다. 초등학교 때 나라 사랑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선생님의 교훈적인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중 “종소리처럼 남의 가슴을 울려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뽐낼 만한 글 솜씨도 없이 지내다가 여고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시가 우수작으로 뽑혀 대학은 문과로 진학했다. 졸업을 몇 달 앞둔 늦가을, 그때는 권위 있던 여성잡지 『여원』신인상 시 부분에 응모, 최종심 두 편에 올랐었고, MBC라디오에 입사하고서도 한 차례 K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원로 시인이 최종심에 올라온 두 작품 중, 내 글의 좋은 구절 몇 줄을 인용하고 ‘현대문학에 기여할 만한 참신한 점’이 부족하여 다른 이를 당선자로 했다는 평이었다. 당시엔 방송 제작 여건이 너무 열악하던 때여서 문학에 대한 짝사랑을 끝내고 일상적인 방송 멘트나 쓰며 방송은 한번 송출되면 기록으로 남지 않는 허무감을 느꼈지만 방송도 남에게 감동을 주는 ‘종소리’일 수도 있다고 위안을 삼았었다.
그러다가 1972년도에 여성지, 기업 사보 등에 게재했던 서정적인 산문들과 방송에 얽힌 일화를 모아 출판을 준비했다. 방송문화의 향상이나 문학인의 사명감보다는 글을 써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만용이었다. 한 권 분량이 모자라 직장에서 퇴근하면 매달려서 2, 3일에 한 편씩을 썼다. 출판을 앞두고 서너 편을 골라 수필문학사를 찾았을 대 전무후무한 ‘신인 작가’의 방법으로 등단시켜 준 『수필문학』과 편집인이었던 김효자, 박연구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1. 시대의 추세에 따른 작품 변화 모색
첫 수필집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1972년 발행)는 수필의 개념과 정의도 모른 채 쓴 것이어서 본격적인 수필을 써야 한다는 자각이 일었다. 당시 월간 『수필문학』지에서 대학교수이 서정 수필과 피천득, 김소운, 윤오영 수필가들의 명수필을 읽으면서 수필이 시보다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장르임을 인식했으나 인간적인 성숙, 지식과 경험의 원숙함이나 철학적인 사고도 없이 재능 또한 부족하여 아득할 뿐이었다. 그 이듬해 『수필문예』(1973년발행, 다음해에 『한국수필』로 개칭) 제5호에 쓴 「종소리」를 선배 수필가들(고 박연구 선생 등)이 ‘수필다운 글’이라고 격려해 주셔서 처녀작으로 삼고 있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고, 은근한 민족 정서도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한국미의 발견과 전통을 소재로 한 글을 썼다. 「모과」「병풍 앞에서」「바가지」(『수필문학』),「동전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등은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보편적인 삶의 의미와 보람,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 존재의 아름다운 실상을 재현하는 변화를 모색했다. 「후문」(1985), 「살리에리의 친구」(1992),「유언비어와 마술모자」(1994)등이 해당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신변잡기로 폄훼되기 쉬운 수필의 소재 개발, 확충을 위한 고심 끝에 클래식 음악과 문학의 접목을 새로운 테마 에세이로 음악 에세이를 시도했다. 음악과 사랑의 언어가 교감된 서정적인 에세이와 인생 탐구의 세련된 문체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예술인으로 사는 것, 예술적 기교의 비밀을 탐색하여 예술 에세이로 발전하고 싶었다. 또 다른 테마 에세이로 문화재 수필도 써서 수필가와 독자들에게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착심을 고취해 보려 했다.
일상의 체험을 알퐁스 도데처럼 뛰어난 시적 서정과 유머 감각, 페이소스를 담아 재조직하여 새로운 경이의 세계를 보여 주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역부족이다. 즐거운 공감을 주고 생활의 활기를 얻게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자연 조국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을 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2. 앞으로의 나의 문학
수필에는 필자의 성정이나 인격의 분위기가 드러나기 쉽다. 맑고 반듯하고 사랑이 있는 품성으로 간곡한 정서를 풀어내야만 듣기 좋은 종소리가 되지 않을까. 삶의 목표와 가치관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예리한 논리적 사고를 전개하면서 부드러운 화법으로 설득력을 높이고 싶다. 유쾌한 상상력과 발랄한 아이디어로 활기를 잃어 가는 현대인에게 판타지를 주며, 위안이 되고 격조와 품격이 있으면서 그윽한 여운을 남기는 글도 써 보려는 과욕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듣던 종소리가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감히 ‘남의 가슴을 울려 주는 종소리’는 아직도 마치지 못한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과 무게와 질감을 삶에서 찾아내어 존재에 대한 자아 찾기의 치열함,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싶다. 메마르고 모질어진 현대인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흔들어 깨우고 싶은 욕심도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도 이웃들, 독자들 가슴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가 되어야 하겠지만, 나이만 많고 능력은 모자란다. 문학에 대한 관심도 얕아진 현실에서 나의 부족한 글이 얼마나 읽힐까마는 관심 갖는 이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세를 추슬러야겠다. 수필은 자아의 각성과 고통으로 펼쳐낼 수 있는 것, 감동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필자 자신의 깨어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셰익스피어가 나이 든 이에게 주는 인생 교훈 아홉 가지 중에는 “아름아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을 실천하며 심안(心眼)의 소유자로서 선과 미의 진실을 담아 내기 위해 관조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좋은 포도주처럼 생각이 무르익고 문장이 명징해질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무디고 태만해서 대충 써 버릴 때가 많다. 부족하면서도 위로의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얹는다. 갈 길은 아득한데 힘없는 기동력과 필력을 탓하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