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셋째 애인
김윤희
남편에게 애인이 생겼다.
남자든 여자든 사랑에 빠지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예전 같으면 짜증을 내거나 토라졌을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고, 말투와 행동도 부드럽고 넉넉해졌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얄미운 감정이 스치기도 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결혼 초, 특별한 원인 없이 세 번이나 유산을 했다. 그 일로 본의 아니게 시댁과 친정에 걱정을 끼쳤다. 외관상 건강해 보였던 터라 주위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태연한 척하던 남편 역시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속상하고 걱정했을까 싶다. 산부인과 의사는 태아의 염색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한의사는 속이 냉해 그런 거라며 보약을 권했다.
결혼 6년 만에 아들을 얻었고, 다시 몇 해가 지나 결혼 10년째 되는 해에 딸을 낳았다. 첫아들을 품에 안고 좋아하던 남편은, 딸을 얻고 나서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퇴근하자마자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내 애인"이라 부르며 유난을 떨었다. 독차지했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것이 서운했던지, 아들 녀석은 괜히 심술을 부리곤 했다.
문득 돌아보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애인이었다. 엄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그해 겨울,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아버지는 막내딸이 사는 미국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큰 캐리어를 끌고 공항 출구로 나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여 보는 내내 명치끝이 먹먹해졌다.
"할아버지, 숨 막혀요!"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와 안기는 손주들을 꼭 껴안은 아버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가까이 모시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마켓에 들러 식료품을 고르고,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쇼핑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나가 산책을 즐기고, 소풍을 나온 듯 들뜬 기분으로 아버지와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근엄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봄눈 녹듯 허물어졌다. 손주들과 뒤엉켜 웃고 어르고 달래는 모습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천진했다. 손주들을 품에 안고 흐뭇해하시는 아버지의 주름마다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우리 부부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큰 효도라도 하는 듯 가슴이 뿌듯했다. 이 세상에 피붙이만큼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지내시는 방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했다.
"여보, 미안하오. 이렇게 좋은 곳에 나 혼자 와서..." 일기 첫 구절을 읽는 순간, 목이 메어 왔다. 한 줄 한 줄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에는 쓸쓸함과 미안함, 그리고 깊은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엄마와 평생을 함께하셨던 아버지가, 좋은 경치를 눈에 담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서도 아내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셨던 것이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품고, 아무 말 없이 외로움을 꾹 눌러 참으셨다.
병세가 호전되면 막내딸네 집에 가겠다고 미국 방문 비자까지 받아두셨지만, 결국 혼자 오실 수밖에 없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그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아버지는 늘 담담한 척하셨지만, 엄마가 떠난 빈자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 슬픔을 자식들 앞에서는 감추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려 하셨다.
내 위로 언니가 둘 더 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세월만큼이나, 우리 세 딸의 사랑도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야말로 여복을 타고난 분이다. 남편이 딸을 "애인"이라 부르듯, 나 역시 아버지의 "셋째 애인"이었다. 손주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동안, 아버지도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고 엄마의 빈자리를 덜어낼 수 있었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엄마 몫까지, 셋째 애인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 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