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의 세상
김윤희
아이들 수업이 끝나기 15분 전. 교문 앞 도로는 자녀를 픽업하러 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주차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교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 잔디 운동장 위에서는 체육수업이 한창이다. 부딪히고 밀치며 힘겹게 공을 빼앗은 풋볼 선수들이 럭비공을 품에 안고 골라인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치어리더들은 점프와 텀블링을 연결하며 훈련에 몰두한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듯, 테니스부원들은 힘차게 공을 상대 코트로 넘긴다. 봄빛이 쏟아지는 교정에는 젊음의 열기와 활력이 가득하다.
종례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학생들이 썰물처럼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피부색도,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도 제각각이지만,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정을 쌓아가는 차세대의 주역들이다. 저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 자연스러운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생기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중에는 스승인지 제자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성숙해 보이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자유분방함 그 자체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더니, 내 영혼은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학창 시절로 돌아가 있다.
나는 교복 세대가 아니었다. 내 윗세대만 하더라도 전국 대부분의 학생이 색상과 디자인이 동일한 교복을 입고 다녔다. 1980년대 이후,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일제 강점기의 획일적 교육 문화를 청산한다는 취지 아래 문교부의 획기적인 방안으로 교복과 두발 자율화가 시행되었다. 청소년 탈선과 빈부 격차 노출을 우려한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도 있었지만, 큰 이변은 없었다. 교칙과 규율이 엄격했던 내 모교는 학교장 재량에 따른 자율화였기에 이런저런 규제와 제한도 많았지만, 나는 깔끔한 커트 머리에 단정하게 사복을 입고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땐 동기들 모두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자율화가 시발점이 되어 교육계에 혁신적인 바람이 일어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꿈은 착각에 불과했다. 기대한 만큼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인교육을 지향해야 할 학교는 여전히 전교 석차를 기준으로 우열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했고,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밤 10시까지 자율이 아닌 타율적이고 맹목적인 시간표를 따라야 했다. 심지어 시청이나 도청 공무원과 함께 탄 대중버스 안에서 떠들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풍경도 벌어졌다.
작년 여름, 한 지인이 여고생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무작정 나를 찾아왔다. 딸아이의 조기 유학을 위해 홈스테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입시를 준비 중인 아들을 둔 처지라 그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무겁고 착잡했다.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인 그 지인은, 딸의 유학이 단순한 어학연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능하다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옮겨주고 싶다며 울분을 토했다. 학생들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서울에서 상위 10개 대학에 진학하려면 사교육비가 합격률과 정비례한다는 현실을 한탄했다. 교육 현장에서 직접 몸담고 있는 교사의 말이었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내가 가타부타할 자격은 없지만, 질풍노도의 격변기 속에서 사춘기 소녀를 이역만리의 낯선 땅에 홀로 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로서는 의아하기만 했다. 부모, 형제, 친구들과 떨어져 생이별의 아픔을 견뎌야 하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향수병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어린 여고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싶었다. 현지에서 살아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조기유학생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낯선 땅에서 분투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노천명 시인의 「들국화」 한 구절이 마음을 적신다.
한 아름 고이 안고 들어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마음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본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화초 한 포기도 분갈이 후엔 시름시름 앓기 마련인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오죽하랴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그 난관을 극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하지만 현실 도피는 결코 최선책이 아닐 것이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그것을 바로잡는 일 또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아닐까. 기성세대가 외면하고 방치한 문제들을, 그 다음 세대는 스스로 해결해 나갈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봄을 살아가는 신세대들이여, 너희들의 순수하고 당찬 패기야말로 내일의 세상을 태양보다 더 찬란하게 밝힐 원동력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한국교육 환경 때문에 미국교육을 선택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만 작가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자라나는 현세대와 신세대가 있기 까지 전세대의 희생과 열정이 대단했던 것도 인정하구요^^
교육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있기 보다 함께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크는 자녀가 아무래도 강하게 클 것 같네요.
좋은 내용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