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시장의  작은거인

 

                                                                                                                      김윤희 

 

   엘에이 다운타운에는 서울 동대문시장과 닮은 자바시장이 있다. 점포의 60%가 한인 소유일 뿐 아니라, 동대문시장의 운영 시스템까지 들여와 경영 방식도 매우 비슷하다. 나는 자바시장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해온 사촌 형님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다. 35년 동안 바늘과 실로 시간을 꿰매며 살아오신 형님은, 왜소한 체구로 백여 명의 히스패닉 종업원들을 이끌며 억척스럽게 사업을 꾸려 가고 계신다. 시장 사람들은 그런 형님을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노동과 땀 냄새 속에서 성실히 살아낸 시간의 향기가 그 별명 하나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부부가 불철주야로 일군 삶터에서 아주버님은 심장마비로 쓰러지셨고, 사랑하는 가족과의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허망히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음주와 흡연은 물론, 커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으며 스스로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해 오셨기에, 그 갑작스러운 비보는 우리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그날, 우리는 생명이란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신의 영역임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죽음 또한 함께 시작된다. 탄생과 죽음은 서로 얽힌 자연의 섭리이기에, 우리는 이를 ‘숙명’이라 부른다. 나약하고 작은 여인의 몸으로 아주버님이 남긴 빈자리를 감당해야 했던 형님. 장례식을 치른 뒤에도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경영자이자 가장, 두 남매의 어머니로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남편이 생전에 벌여놓은 크고 작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밤낮으로 동분서주하며 또 하루를 살아내셨다. 거센 파도가 훌륭한 선장을 만든다고 했던가. 지금의 형님은 그 말 그대로, 인생이라는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진정한 선장처럼 보인다.

  우연한 기회에 수필교실에 참여하게 되면서 문학과 인생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어렵게 등단이라는 문턱도 넘었다. 나보다 훨씬 연로하신 문우들이 열정을 품고 글을 쓰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위축되기도 하지만 더 큰 도전을 받는다. 희망이 없는 20대보다, 도전하는 60대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그분들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요즘 대학입시를 앞두고 아들 뒷바라지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저런 일에 쫓기다 잠시 틈을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지만, 말은 잘 풀리지 않고 마음만 조급해진다. 그래도 글쓰기가 아무리 모래땅처럼 느껴져도, 그 밑에 파란 수액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갈증이 내 목을 더 태운다 해도 펜을 놓지 않고 다시 글의 집을 짓는다.

  오랜만에 자바시장에 들어선다. 예전만큼 활기차지는 않지만, 여전히 삶의 에너지가 살아 숨 쉰다. 오가는 차량들과 도로변에 빈틈없이 주차된 자동차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과 이어진 점포들, 그 속에서 상품을 손질하며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저만치 형님이 운영하시는 사업장이 눈에 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에 마음이 무겁다

  사업장 안으로 들어서니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형님의 손을 꼭 잡는다. 김밥과 떡볶이, 잡채와 콩국수 등, 형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싸 간 도시락을 꺼내 함께 먹으며 그간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먼 훗날, 우리가 하루하루 버텨낸 삶의 흔적들이 전설처럼 남아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 줄 것이다.
그 작은 체구에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형님이야말로 자바시장의 진정한 영웅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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