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탈출기 

 

                                                                                                                  김윤희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해외직구 구매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판매 업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러시아에 있는 고객들이 상품을 주문하면, 미국 내에서 물건을 구매해 항공편으로 발송한다. 주로 건강보조식품, 식료품, 뷰티 제품을 취급하지만, 그 외에도 오만 가지가 넘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매일같이 창고에 입출고되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총괄 책임자로서 직원 관리와 교육은 물론, 오너가 부재중인 동안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8년 전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서 파트타임 직원을 채용하는데 주부들에겐 정말 좋은 조건이니  지원해 보라고  추천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몇 년간 은행에 근무했지만 자녀 교육에 집중하는것이 좋겠다는 남편의 의사에 따라 사직하고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 사이 10년이 훌쩍 지났고 경력은 단절되었다. 주위에  커리어우먼들을 보면 왠지 혼자 도태된 기분이 들었고일하는 여성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직원 복지도 꽤 괜찮았다. 주 5일 근무에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시급도 동종 업계 회사들보다  휠씬 높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학부모인 직원을 배려해 교육구 공휴일에도 휴무를 한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주부들에겐 ‘꿈의 직장’이었다. 큰아이는 이미 대학생, 둘째가 11학년 2학기 중이라 파트타임으로 워밍업을 하다가, 둘째가 대학에 진학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면접이라도 한번 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인터뷰를 보러 갔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오너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눈빛은 레이저 빛처럼 날카로웠고, 얼굴엔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는 자신과 회사의 이력, 향후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두 자녀의 교육과 미국 지사 창업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창업은 서류상 완료된 상태였고, 인력 충원이 끝나는 대로 실무에 바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면접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내게 그는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전업주부에서 사회인으로의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출근 첫날,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 ID와 비밀번호를 받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ERP란 회사의 주문, 재고, 회계, 고객 관리 등 전반적인 업무를 하나로 연결하는 시스템이지만, 내게는 너무도 낯선 세계였다. 창립 멤버였던 나는 입사 일주일 선배인 직원 한 명 외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교육도 매뉴얼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오너는 면접 이후 계속 외부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회사는 마치 막 태어난 아기처럼, 모든 것이 서툴고 불완전해 보였다. 

  직장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자신 있는 정리정돈부터 시작했다. 뒤섞여 있던 각종 서류들과 영수증을 월별, 일별로 나눠 폴더에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 상품들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고, 포장 박스들도 사이즈별로 나눠 라벨링했다. 그렇게 하나 둘 손을 대기 시작하자 어수선하던 공간이 조금씩 회사다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입사 2주 차, 인원 충원이 모두 끝이 났다. 오너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그동안 지켜봤는데, 팀장을 맡아줬으면 합니다.”  

전업주부로 지내왔던 내게 그 제안은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해서 내 일처럼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뜻밖의 제안에 기쁘기도 했지만 어깨가 무거워졌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리더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 준 오너의 신뢰는, 열심히 해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회사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년 만에 10배나 더 큰 장소로 이사할 만큼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오너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일궈낸 성과로 인해 회사는 매일 축제 분위기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부족한 점 투성이였던 나는 맡겨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을 하나씩 갖추며 부단히 노력했고, 직책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갔다. 엑셀을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 늦은 밤까지 유튜브 강의를 보며 하나하나 따라 했고, 생소한 용어나 업무 프로세스는 사전을 찾아가며 익혔다. 실수도 많았지만  어떤 일이든 책임감을 갖고 마무리하려 애썼다. 

  입사 4년차 되던 해, 오너 가족은 미국 체류 비자 문제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출국을 앞두고, 오너는 대표실로 불렀다.  

“회사를 전적으로 맡길 사람은 김 매니저님 밖에 없습니다. 미국 회사를 관리해 주세요.”  

책임이 주는 압박감을  알기에, 여러 차례 고사했다.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회사를 위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회사에 제 자산이 수백만 불이나 투자되어 있어요.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습니다. 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저는 매니저님의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신뢰를 믿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민 그의 손을, 더는 뿌리칠 수 없었다.  회사의 기밀 문서들과 여러개의 법인 카드, 은행 계좌의 서명권까지 인수인계를 해 주고, 오너는 한국으로 떠났다. 지금은  카카오톡, 줌 미팅, 이메일을 통해 매일 소통하며 회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개인의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이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때론 실력 그 이상으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들 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몇 번의 기회가 왔다 갔는지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업주부에서 다시 사회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다가오는 기회 앞에 손을 내밀 수 있고, 그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기회는 내 것이 된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앞에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그 한 줄기 가능성에 오늘을 다지고, 내일을 꿈꾼다. 다가올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묵묵히자리를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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