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김윤희
기록적인 폭염으로 한반도 전역에 특보가 내려졌던 지난여름, 우리 가족은 1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출국 전 날씨 예보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마주한 고온다습한 날씨는 그 이상이었다. 땀은 줄줄 흐르고, 밤마다 열대야와 매미 소리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날씨였지만, 무더위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반가운 친구들, 그리고 눈부시게 달라진 조국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를 알려주고,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마음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해가 기울 무렵, 선선해진 저녁 시간에 시내 구경을 나섰다.
성산대교 아래 흐르는 한강은 도시의 불빛과 하늘에서 내려앉은 별빛이 어우러져 잔잔한 물결 위에 반짝였다. 남산타워는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러 언어와 피부색의 여행자들이 거리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그 속에서 ‘한류’가 단지 유행이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문화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수는 매년 증가해 수천만 명에 이르고 있다. 지방 곳곳에서는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 프로그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곳곳에 편의시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바가지요금이나 불법 상행위 소식은 걱정을 자아낸다. 혹여 힘들게 쌓아온 한국의 이미지에 흠이 가는 건 아닐까,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우려는 현실에서 마주하기도 했다. 아들이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스타일을 해보고 싶다며 잡지를 들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다녀온 후 “한국은 팁을 미용사가 직접 가져 가는거야?”라며 의아해했다. 입구에 균일 가격이 안내되어 있었지만, 실제 지불한 금액은 더 많았던 것이다. 혹시 외국에서 온, 한국어가 서툰 어린손님이라 바가지를 씌운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가격이 인상됐는데 안내문만 안 바꿨을 수도 있어”라며 설명을 했지만, 찝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빅베어로 스키 캠프를 다녀오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해발 6,700피트 산길을 스노우 체인에 의지해 4시간 넘게 내려온 상황이라 다시 올라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른 기념품 가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놀랍게도 직원이 지갑을 주워 보관 중이라고 했다. 당장 필요한 운전면허증 걱정을 하자, 주인은 주저 없이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배송비는 지갑 속 현금에서 처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도착한 지갑은 손도 대지 않은 그대로였다. 모든 비용을 가게에서 부담한 것이었다.
그 일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한 고객에게 진심을 다한 상인의 태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작은 정성이야말로 ‘선진국의 품격’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모여드는 나라가 되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지금, 우리가 더욱 지켜야 할 것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의 품격이다. 상도와 양심이 흔들린다면, 공들여 쌓은 신뢰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고국 방문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속에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긍지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어 뜻깊었다. 이 여정은 오래도록 기억될,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계절은 또다시 한 바퀴를 돌아, 우리는 어느새 여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섰다.어느덧 추억이 된 매미 소리가, 아련한 기억을 실어 귀가에 맴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