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그리워하면서/김영화
연로한 고모를 보러 왔다.“아이고, 우리영화 어서 오너라. ”초인종을 누르자 허리가 기역 자로 구부러진 고모가 맨발로 나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끌어안는다. 고모 뒤에 함께 따라 나온 그녀의 자녀인, 사촌 동생들이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있다가 나를 맞아준다. 고모는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어제저녁부터 몇 번씩 일어나 시계를 바라보며 창밖을 내다보았다고 한다. 새벽부터 자식들을 깨워, 장보아 음식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였다. 고모에게 엎드려 인사를 했다.
한참 동안 여럿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내 손을 잡고 있던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점심에 여러 가지 생선, 고기 등이 차려졌는데도 배부르다며 거의 못 먹은 고모가 걱정되었다. 찾아보니 살며시 방으로 가서 늘 먹던 소화제를 먹고 앉아 있다. “고모, 어디 아프세요?“하고 손을 잡고 묻자 “영화야, 너는 남편에게 잘해주어 오래오래 같이 살다 같이 가렴, 네 고모부가 보고 싶다.”라고 한다. 부부란 서로의 생을 완성해 주는 동행이다. 함께 걸은 길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이어진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그녀, 지금쯤이면 잊어버렸을 만한 그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이슬 맺힌 눈망울이 너무 뜻밖이다.
이제 내겐 93세의 고모만 남았다. 몇 년이나 지났을까. 그녀를 뵌 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그사이 고모는 더 노약해졌다. 젊은 시절 그녀는 그 시대 사람답지 않게 유난히 키가 크고, 코가 오뚝하며 하얀 얼굴 피부여서 소련인과 혼혈인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특별히 노래를 잘했고 늘 찬송가를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첫 조카인 나를 무척 사랑했다. 어릴 적 그녀가 보고 싶어 시집간 고모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인정이 많았던 고모부는 내가 가면 집 앞에 있는 잡화상의 온갖 맛있는 과자를 다 사주고 꿩, 오리를 잡아서 직접 요리해 주곤 했다. 애처가였던 그가 어린 자식 7명을 남기고 일찍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모든 것을 남편만 의지하고 살아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고모는 죽은 남편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험난한 삶을 견뎌내야 했다. 그녀의 자녀들이 똘똘 뭉쳐 서로 도와가며 일하고 공부를 하더니 지금은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자손들의 효도를 받고 사는 그녀를 주위 사람들은 착한 그녀의 심성을 하늘이 도와서 복 받은 멋쟁이 노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만 한 자식 없다. 김 서방에게 정성스럽게 잘해라.”라며 유언처럼 내게 다짐시킨다. 사랑은 죽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남는 것일까? 그리움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부부란 무엇인가? 언젠가 티브이 어느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 모두를 폭소하게 했던 노부부 말처럼‘평생웬수’일 수도 있다. 7명의 자녀를 남기고 일찍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우리 고모 같은 부부도 있다. “ 부부란 사랑 이전에 한 평생을 같은 곳을 향하여 살아가자고 약속한 동반자입니다.”라고 어느 혼례식에서의 주례자 말이 생각난다. 평생을 원수?같다면서도 보살피며, 먼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한 배를 타고 가는 동반자로, 그리고 여러 다른 모습으로 사는 부부관계를 본다.
우리도 올해 어언 금혼이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에 이민 온 우리의 삶은 전쟁터 같았다. 수 없이 다투면서도 신앙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아픈 몸 서로 애틋해하며 넘어질까? 손을 잡아 지팡이 되어주며 산다. 자식들을 칭찬하며 격려하였던 우리에게 이젠 거꾸로“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워요.”하는 자식들의 칭찬을 받으며 멋쩍게 웃으며 산다. 함께 외출할 때 말없이 각각 옷을 입고 나와서 보면 커풀룩으로 어울리게 입고, 서로 바라보며 “우리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 봐!”하고 웃을 때가 많다. 평생을 함께한 부부는 결국 서로의 거울이 된 것일까? 한쪽이 사라져도 그 거울 속에는 여전히 둘이 함께 비칠 것 같다.
남편이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건만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남편만 못하다.”라며 남편을 그리워하는 고모를 본다. 그녀를 다는 이해할 수 없지만 곧 떠나실 날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부부가 아무리 사랑해도 사고가 아니고서는 함께 갈 수 없다. 각자 살아있는 동안 자기 몫의 향기로 살다가 향기처럼 잊힐 수는 없을까? 가끔 생각나면 조금만 그리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