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노패스(Mono Pass)/김영화

 

 

 ‘도전이라는 말은 언제나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새로운 일의 시작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서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에게 도전은 바로 삶을 다시 붙드는 용기였다.

 

 남편은 다시 일어섰다. 뇌졸중과 심장병 후유증으로 4년이란 긴 투병 생활을 이겨낸 의지의 사나이다. 전에는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늘 산을 찾았다. 땀 흘리며 바람을 맞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병 이후 그는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다. 그는 힘든 재활 기간을 묵묵히 견뎌냈지만, 산은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았다. 동네 길을 산책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산을 오르리라고 속으로 다짐해 보곤 했다.

 

 꺼지지 않았던 그 안의 불씨에 불꽃이 튀었다. 전에 등산팀에서 오랫동안 함께 등산했던 지인이 이스턴 시에라에 등산을 다녀왔다고 사진을 보냈다. “우리도 모노 패스에 한번 가 볼까?” 건강한 지인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그가 안쓰러워 말해보았다. 만 피트를 훌쩍 넘는 고도, 왕복 8마일이 되는 쉽지 않은 길임을 알면서도 그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두려움보다 강한 것은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우선 의사에게 모노 패스 등산 계획을 알리며 허락을 받았다. 아주 천천히 심장에 무리가 되지 않는 정도에서 하라고 한다. 두 아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금 더 고도가 낮은 산부터 연습하고 괜찮으면 저희랑 함께 가자고 한다. 산 가까운 호텔에 전날 도착하여 푹 자고 다음 날 등산하고 또 하루를 쉬고 돌아오기로 호텔 예약을 했다. 그리고 매주 한두 번씩 고도 7~8천 피트 되는 산으로 한 달 동안 등산 다녔다.

 

  결전의 날이다. 호텔에서 해가 뜨기 전에 나왔다. 8월 중순,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걸어야 심장에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고도 9,710피트의 등산로 입구다. 만 년 전에는 빙하로 덮인 곳이다. 6시쯤 되자 태양이 빨갛게 머리를 내밀며 올라와 맞은 편의 회색 바위산 꼭대기에 핑크빛을 뿌려 눈이 부시다. 해가 산 등허리까지 올라오니 하늘 닿을 듯 높이 자란 소나무 가지 잎새 사이로 별처럼 반짝이는 빛이 쏟아진다. 임신한 여인네 배처럼 볼록 나온 하현달이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해를 마주 보며 우리를 응원한다. 까치만 한 작은 새들은 맑은소리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아직도 높은 산 계곡 음지에는 흰 눈이 남아서 초원에 핀 흰색, 노란색, 보라색의 작은 들꽃을 키우고 나비들은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한다. 큰 사슴 한 마리가 이 높은 산맥의 넓은 초원에서 아침을 먹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모노 패스까지 1.7마일 남았다는 표지판이 숨이 가쁘고 지쳐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서 있다. 입었던 따뜻한 재킷을 벗었어도 땀이 나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오랜만에 짊어진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아프게 한다. 에너지도 필요하고 짐을 가볍게 할 겸 마침 등산로 가까이 그늘에 있는 넓은 돌에 앉아서 사과와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창조주의 섭리를 본다. 수백 년은 자랐을 만한 큰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쓰러져 누워있다. 그 나무는 썩어서 기름진 토양이 되어주고 그 옆에서는 어린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어린 소나무는 자라면서 뿌리를 가까이 있는 큰 소나무의 뿌리에 얹혀서 물을 먹으며 자란다고 공원관리원에서 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듯이 큰 나무가 어린나무를 키우는 이 놀라운 자연법칙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산행은 절대 쉽지 않았다. 고도가 오를수록 숨은 거칠어지고, 가슴은 뜨거워지며,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남편의 얼굴은 점점 하얘지며 피곤이 역력했다. 정상까지 0.3 마일 남았다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몇 발짝 걷고 한참씩 쉬어가며 숨을 고르며 걸어 올랐다. “조금만 더 가자.”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작은 승리가 쌓였다. 마치 4년 전 병원에서 집에 온 후 눈물을 삼키며 동네를 한     발작씩 한 블록을 걷고 승리를 자축했던 것처럼.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없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매머드 산맥은 푸른 하늘에 안겨서 지칠대로 지친 우리를 감싸주는 같다. 남편의 눈에는 뭉클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눈물이 맺혀있다. 이것은 단순한 산행의 기쁨이 아니라 삶을 향한 도전의 승리다. 바로 뒤를 쫓아 올라온 60 말의 남자가 자신들이 자랑스럽다며 축배를 들면서 곁에 말없이 있는 우리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자기들보다 한참 나이 많은 우리에게서 도전을 받는다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도전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걷는 , 불가능해 보이는 위에서 내디디는 , 그것이 용기고, 모험이고, 도전이다. 모노 패스에서의 오늘 하루는 어떤 험하고 높은 길이 닥쳐와도 마음을 함께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을 이룰 있음을 알게 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도전이란 결국 삶을 사랑하는 다른 이름이라고.

 

08/14/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