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준 기쁨/김영화

 

 

 

 110도가 넘나드는 곳을 장기간 여행하고 돌아왔다. 햇볕이 뜨거워서 바닷가 가까운 시원한 우리 집이 그리웠다. 여행 떠나기 전에 앞뒤마당의 잔디와 화분과 과일나무에 물을 흠뻑 넘치도록 주었지만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물을 자주 마시며 우리집 꽃과 과일나무들이 목 마를까 걱정이 됐다.

 

 

 

 집 앞에 들어서니 아주 조그맣던 장미꽃 몽우리들이 노랗게, 빨갛게, 하얗게 활짝 펴서 짙은 향기로 우리를 반긴다. 파랗던 수국들은 진분홍색으로 탐스럽고 의젓하게 바라본다 이렇게 밝게 꽃을 피울 때까지 우리가 돌아와 보지 못 할 까봐 가슴 조이며 기다렸을 수국과 장미꽃이 사랑스럽다. 흙을 만져보니 촉촉하다. 고맙게도 옆집의 착한 J가 물을 준 모양이다. J는 우리가 집을 비우면 특별히 부탁을 안 해도 집을 살펴주고 신문이나 메일등도 거둔다. 참 고마운 이웃이다.

 

 

 

 여행 가방을 풀기도 전에 J의 손길이 닿지 않은 뒷마당에 나가 보았다. 이게 왠일인가! 노랑, 빨강 치자 꽃이 살랑거리며 반갑다고 온 몸을 흔들며 웃는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서 몇개는 잔디에 떨어졌다. 하얀 꽃이 만발했던 레몬나무에는 파란 레몬이 가지마다 많이도 열렸다. 무화과나무와 자두나무에도 파란 열매들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지 않은가! 고맙다, 나무들아, 꽃들아!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는데도 씩씩하게 잘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준 너희들이 최고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잔디에 떨어진 낙엽을 깨끗이 치우고 물도 시원할 만큼 뿌려주었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고 다시 나가 보니 나뭇잎마다 반짝반짝 바닷바람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그 사이 나무와 꽃들도 내가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앞 마당에 물을 준 이웃 J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를 행복하게 해준 과일나무들과 꽃들의 사진을 보냈더니 나만큼 좋아한다.

 

 

 

식물도 사람처럼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것 같다.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서 목 말라도 참고 견디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준 우리 집 꽃들과 과일나무처럼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애완동물을 키우며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자기 부모보다 애완 동물을 더 사랑한다고 불편한 마음을 토해내던 어떤 노인이 떠올라 쓴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나는 무엇이나 오래 기다리지를 못하는 편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아플 때는 더욱 참을성이 없어진다. 즉흥적으로 생각나는대로 빠르게 일을 하다 보니 잘 넘어지고 실수가 많다. 그래서 씨를 뿌리고 새 싹이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주는 농부가 존경스럽다. 그나마 내가 사랑으로 참아주고 정성을 다하며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아들의 어머니, 오랜 세월 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일이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신 이가 내게 주신 축복의 기회였고, 그가 도우셨다.

 

 

 

빈 집을 지키며 뜨거운 날씨에 목 마르고 힘들었을 텐 데도 잘 참고 견뎌준 우리 집 과일나무들이 자랑스럽고, 어여쁜 꽃들에게서 기다림이 주는 기쁨을 맛본다.

 

06/1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