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1950∼ )
바람은 서정시인들의 오랜 친구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그것을 시인들은 몹시나 좋아한다. 그 까닭은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우선, 바람은 알지 못할 곳에서 출발해서는 스치듯 금세 사라진다. 곰곰이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고, 운명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모두 알지 못할 곳에서 시작되고, 분명히 존재했다가, 찰나인 듯 지나가버린다. 그러니까 바람은 우리라든가 우리가 경험하는 뭔가와 닮은 데가 있다.
시인들이 바람을 사랑하는 다른 까닭은, 바람이란 뭔가를 품고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그것은 항상 무엇인가를 싣고서 날아온다. 봄바람이 사랑스럽고 가을바람이 쓸쓸한 건 온도 차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 안에는 우리가 직감으로 알게 되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인들이 바람을 사랑하는 두 마음을 모아 시로 쓴다면 ‘풍경 달다’가 된다. 이 작품 안에서 풍경은 먼 데 놓인 사랑의 기원이다. 그 기원을 바람이 품고 당신에게 달려갈 것이다. 이마를 씻어 주고 볼을 스치는 바람에 마음이 실려 있다니. 바람 한 조각으로도 이 세상은 무심에서 유심으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