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랑/ 톨스토이

 

모든 사람을 다, 그리고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향락을

사랑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그와의 관계를 끊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톨스토이 문학전집』(한국톨스토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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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금욕과 사유재산 철폐를 외쳤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끊임없는 방탕의 삶이었고 많은 노예를 거느린 대지주였던 시절도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솔로몬의 전도서를 길게 인용하고 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만 살아간다면서, 사랑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축복을 베푸는데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많은 선행이 있지만 진정한 선행은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 그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이유를 가진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대가를 바라는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가 진정 바랐던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사이에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었다. 사랑을 인간이 성취해야할 최고의 목표로 여겼다. 그걸 위해 글을 썼고 그 정신들을 하나씩 글에다 담았다. 그는 ‘1일 1선’과 최후의 저서 ‘인생의 길’을 통해 모든 인간이 사랑으로 맺어지는 세계를 하루속히 이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글이 지나치게 계몽적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애써 반감을 갖지 않는 이상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대문호이자 위대한 사상가요 종교가인 그의 모든 면모가 배어 있는 작품 '부활'은 톨스토이가 노년을 불사른 세계문학사에 영원히 빛날 불후의 명작이다. 그런데 ‘부활’뿐 아니라 그의 작품 대부분이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의 반열에 든 반면, 그의 인물됨은 예나 지금이나 의문에 싸여 있다. 대중이 생각하듯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으며, 한때 소수가 떠받들듯 예언자나 성인은 더욱 아니었다. 톨스토이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린다. 로망롤랑은 그에게서 예술과 인간 모두의 완성을 보았다고 했지만, 예술가로서는 긍정하되 사상가로서는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인격파탄자라며 비난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톨스토이는 40대 후반에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의 문제를 깊이 숙고했다. 한동안 문학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하였고, 그 결과 기독교적 아나키즘으로 평가되는 ‘톨스토이즘’을 낳기도 했다. 그의 활동 영역이 점차 종교 쪽으로 옮겨가면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인 소피아와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즈음의 그는 청빈과 금욕을 예찬하면서도 정작 안락한 삶을 떨치지 못해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톨스토이는 이성적 사랑만이 참사랑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와의 관계를 끊을 각오’까지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이거야말로 예전 패티김과 길옥윤, 김지미와 최무룡 등의 연예인들이 말했던 "사랑하니까 헤어진다" 그 버전이 아닌가. 이와는 다른 사정이지만 어떤 이들은 내게 엄마를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한다. 사실만큼 사셨고 할만큼 했으니 더 이상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어머니의 평안을 위해 이쯤에서 관계를 끊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어머니의 현재 컨디션이 연명치료의 단계도 아닐뿐더러, 놓고 싶다고 놓아지고 붙잡는다고 붙잡아지는 상태가 아님을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지 어쩐지, '참사랑'이 무언지도 잘 알지 못하지만 내 삶이 조금이나마 덜 헛되고 덜 허망해지려면 도리없다. 이 끈을 꽉 붙들고 있는 수밖에.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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