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 김삼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니다이어리가 있다.

당시는 수첩手帖이라고 했다. 문자 그대로 손바닥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작지만 일 년 열두 달, 한 달 삼십일이 메모할 수 있도록 칸이 쳐있어 칸마다 작은 글씨로 서너 줄 메모할 수 있다. 요즘은 개인용 휴대전화기에 다양한 정보를 입력할 수 있어서 수첩은 용도폐기된 지 오래지만 그때는 일 년이 지나면 새해의 수첩을 구해 전화번호 등을 옮겨 쓰고 헌 것은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 수첩은 정확히 51년 동안을 내 서랍 안에서 건재하고 있다. 비닐커버도 없어진 지 오래인 이 수첩은 제대 말년에 쓰던 것으로 지금껏 보물인양 애지중지한다. 서랍을 뒤지다가 이 수첩이 나오면 그것에 빠져서 웃어가며 혹은 상을 찌푸려가며 다 보아야 끝이 난다. 특히 유격훈련을 받을 때 훈련병들을 다그치는 빨간 대창모자를 쓴 조교의 말들은 빠지지 않고 다 읽는다.

“본 교장까지 오느라고 대단히 수고 많았다. 우선 실습을 하기 전에 보고요령 및 실습요령을 알려주겠으니 숙지하기 바란다. 우선 일 명 앞으로! 하게 되면 내 앞까지 일 분간에 일만 번 내지 이만 번 야호! 복창을 하면서 ○번 올빼미 하강준비 끝 한다.”

“이놈으 섀끼들 눈방울 돌아가는 소리가 자갈밭에 구루마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소대 반동시작! 반동 간에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야포가. 요령은 힘차게! 악으로! 군가시작! 으낫, 울, 어이, 너이!”

이걸 훈련 중 휴식 시간에 기억을 더듬어 수첩에 쓰는 걸 보며 옆에 놈이 그랬다. “너 임마, 이거 걸리면 기밀누설로 영창깜이야,” 그러면 나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러면 일부러라도 걸려야겠다. 영창 가서 앉아 있는 게 유격훈련보단 백번 편하지.”

이 오십 년 묵은 수첩이 아직 건재한 이유는 말하자면 ‘향수’다. 온실에 화초처럼 지내다가 처음으로 군대라는 상명하복의 센 조직에 들어와 겪는 일이 한두 가지인가. 적응력도 인내력도 체력도 다 여기서 배웠다. 수첩의 절반가량은 시구詩句며 문인들의 좋은 문장들도 빼곡이 메모되어 있어서 불침번이나 보초를 설 때 불빛 쪽으로 가서 짬짬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은퇴 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묵은 수첩에서 글감을 건지기도 했다.

지금 내 앞에는 얼마 전에 선물 받은 2023년도 다이어리가 놓여있다. 나는 이것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 중이다.

어느 시절의 나는 다이어리를 열심히 사용했었다. 아니, ‘열심히’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출근과 동시에 할 일을 기록하고, 퇴근 전에는 한 일은 빨간 사인펜으로 그었다.

다이어리는 늘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했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회의를 할 때는 물론이고 내방객을 만나러 면회실로 갈 때도 그것은 필수품이었다. 부하직원 면담할 때도 다이어리는 당연히 펼쳐있었다. 퇴근할 때는 가방에 챙겨갔다. 다이어리가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한 것인지, 내가 다이어리를 섬기고 산 것인지 구별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 안엔 조그만 글자로 가득가득 채워져 갔다. 빨간 줄이 많은 것은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였다. 11월이 넘어서면 다이어리는 너덜너덜해져서 간신히 언덕을 뛰어올라온 전령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것 같았다.

다른 회사의 대표가 되어서도 다이어리의 사용은 멈추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 메모를 첨부하고 빨간 줄로 그어가며 살아온 인생의 가운데 토막이었다. 전 회사에서 챙겨온 다이어리와 거기에 더해 간 새 회사의 다이어리는 내가 일해 온 역사였고 그래서 그것들은 내 방 서가, 가장 좋은 자리에 연대순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연례행사가 다가오면 담당자는 내 다이어리를 참고해서 기안을 했다.

그랬는데, 정말 다이어리와 그렇게 불가분의 관계로 잘 지내왔는데, 하루아침에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다. ‘관계’라는 것은 지속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것이지만 끊은 주체가 누군지가 중요하다. 끊은 것은 나였고 다이어리는 책임이 없다. 아무튼 사업을 접었고 사업을 접고 나니 다이어리를 쓸 일이 없었다. 책상을 정리할 때 열권이 넘는 다이어리는 소각장으로 가져가 모두 태워버렸다.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전원생활을 5년 가량했다. 그 5년, 다이어리를 쓸 일이 없었던 그 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연말연시에 문구점에서 다이어리를 보면 공연히 뒤적이며 옛날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지는 않도 매년 다이어리가 한두 권 생겼다. 지인들을 통해서다. 새 다이어리를 보면 향수가 되살아나긴 하지만 옛날처럼 계획을 짜고 관리를 해야 할 일이 없다 보니 쓸 일도 없다. 다이어리는 메모장 대용이 되고 만다. 독서메모로 쓰고 좋은 문장이 발견되면 필사를 해두는 용도로도 썼다. 해 지난 고급장정의 다이어리를 보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선물 받은 다이어리를 들어본다. 고급스러운 장정,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의 표지, 손에 잡히는 양감. 다이어리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페이지가 차르르 넘어간다. 그리고 선물한 분의 마음을 생각한다.

연말 어느 날 그의 차 안 기어스틱 옆 자리에서 그의 다이어리를 보았다. 새것이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불어난 너덜너덜한 다이어리. 무엇이 그토록 쓸 것이 많았을까? 반짝 떠오른 문장? 새 글감? 기발한 표현? 신호대기등에 걸리자 그는 다이어리를 집어 들고 진지하게 뭔가를 메모한다. 내무반에서 보초를 설 때 갑자기 떠오른 한 줄의 문장. 불빛을 찾아 그 밑에서 끼적이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오십 년 전이다. 나는 잠시 감고 있던 눈을 뜬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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