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여는 시간 / 송귀연

 

 

영하의 날씨에 세상이 얼어붙었다. 미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나무엔 주홍색 감들이 꽃등처럼 매달려 있다. 탱글탱글하던 풋감이 노랗게 익어가다 점차 쪼그라들더니 풍찬노숙에 내몰려 이제 갈색으로 변해간다.

요즘은 곶감을 만들 때 감을 기계로 깎아 건조실에 말린다. 작업이 기계화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옛날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호롱불 밑에서 정성스레 감을 깎았다. 주렁주렁 줄에 꿰어서 처마 밑에 매달아 놓으면 바람과 햇살이 차례로 드나들며 다디단 곶감으로 익혔다.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곶감을 보면 왠지 주름 팬 할머니 얼굴 같아 마냥 친근해진다.

기다림은 시간을 곰삭히는 것이다. 열정과 분노와 욕심과 거침을 자신의 내면에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비바람이 지나간 뒤의 햇살처럼, 풍랑 지나간 뒤의 수면처럼 고요해지는 것을 말한다. 삶의 순리를 말할 때면 나도 모르게 유순해진다. 늙음이란 모든 외적인 것들과 맞바꿔 살아온 삶의 내면이 아닐까. 거기엔 화려한 젊음은 없으나 곶감처럼 깊은 맛을 내는 그윽함이 있다. 이즈음 해가 뜨는 곳보다는 지는 자리에 더 마음 두어지는 까닭 모를 기울임도 그런 것이리라.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다. 어떤 결과를 얻기까진 숱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도시에 살면서는 느끼지 못했다. 씨앗을 뿌리면 땅속에서 새싹이 돋기까진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싹이 자라 열매 맺고 수확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적절한 노동과 보살핌도 동반한다. 도자기를 빚는 과정이 그러하고, 된장, 고추장을 담아 삭히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세상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순이 넘은 나이에 새삼 깨달았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벚꽃이 휘날리듯 봄날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기다려도 시간은 지나가며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을. 다만 마지막 그 순간, 내 삶이 제대로 삭히었는지 풋감처럼 떫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주어진 시간을 경작하다 보면 잘 익은 곶감이 되기도 하리라.

풋단감을 네 조각으로 쪼개어 건조기에 넣고 말려보았다. 감은 천천히 자신을 비워내며 사방에서 조여 오는 온기에 서서히 말라갔다. 열 시간을 족히 넘는 동안 건조시키자 수분이 마르고 오그라들면서 하나둘 결이 생기기 시작했다. 번데기처럼 몸을 말고 움츠러들며 과즙을 축적하더니 서서히 곶감이 되어갔다.

강태공은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 주나라의 문왕이 두루 인재를 찾다가 초야에 묻힌 그를 국사로 삼게 되었다. 지긋이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얼름낚시꾼은 얼음장 밑에서 물고기가 미끼를 물게 되는 그 순간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기까지 절망과 실패의 연속일 테지만 언젠가는 월척의 결실이 있기 마련이다.

겨울잠은 먹을 것이 부족한 동물들의 생존법이다. 북극 제비갈매기는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회색 고래들은 바하캘리포르니아의 따뜻한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간다. 서식지를 이동해서 겨울을 나는가 하면, 몸의 변화를 통해 극복하기도 한다. 이렇듯 동물들도 고난의 기다림 끝에 다시 새봄을 맞는 것이다.

아들이 사춘기를 앓을 때, 지켜보며 기다릴 줄 모르고 안달복달했다. 아이는 진득하니 책상 앞에 붙어 있지 않고 수시로 방을 들락날락하였다. 게임을 한다거나 아니면 헤어젤을 잔뜩 발라 앞머리를 세우곤 바깥으로 나돌았다. 남편이 퇴직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도 현명한 아내가 못 되었다. 잠시 위로를 건넸지만 오래지 않아 불만을 터뜨리며 몰아붙였다. 갑자기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그의 절망을 헤아리지 못했다. 남편에게 필요했던 건 지속적인 응원과 따뜻한 격려의 말이 아니었을까.

까마귀들이 요란하게 떠들며 감나무에 앉아 있다. 먹이가 있으니 어서 모이라는 일종의 알림일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만찬이겠는가. 일손이 모자라 수확을 포기하면서 감나무의 감은 아예 새들의 풍성한 밥상이 되었다.

날마다 갈색으로 바스러지는 감을 올려다본다. 공중에 내걸린 조형물 같다. 마지막 하나마저 사라지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그럴 때 기다림은 가만히 툇마루에서 다시 봄을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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