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출근길 / 강천
배칠배칠 나비 한 마리가 사거리 건널목으로 날아온다. 막 해 뜨는 시간, 나비가 나돌아다니기에는 아직 이른 때다. 힘이 실리지 않은 날갯짓이 어딘지 어수룩해 보인다. 지난밤 잠자리를 잘못 골라 아침 산책 나온 사람의 발길질에 내쫓겼나 보다. 이슬 젖은 날개를 말리는 데만 해도 한참이나 공을 들이는 게 날벌레들인데 벌써 움직이려니 몸이 저리 무거울밖에.
내가 서 있는 이쪽은 아파트가 빼곡한 사람의 영역이다. 길 건너에는 강변을 따라 풀숲이 있어 나비가 먹이를 찾거나 짝을 만날만한 생활공간이 있다. 이왕 잠을 설쳤으니 서둘러 삶터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이리로 다가오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무단횡단을 시도했지만 달리는 차들에 가로막혀 번번이 밀려났다. 드디어 건널목, 아직 정지신호인데 막무가내로 돌진이다. 높이나 날든지, 겨우 무릎 정도로 비실비실한 모습이 영 불안하다. 왕복 8차선인 꽤 큰 대로다. 한갓진 저 모양새로 이 넓은 도로를 무사히 건널 수나 있을는지. 그나마 지금은 도로가 한적한 시간이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목숨을 건 나비의 모험에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선 하나를 겨우 다 건너갈 즈음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속력을 내어 다가온다. 저대로 가다가는 충돌할 것이 뻔한 데도 아는 듯 모르는 듯 앞으로만 나아간다. 휘익 휙, 둘이 엇갈렸다. 부딪혀서 땅에 떨어졌을까, 아니면 아래로 빠져나왔을까.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보이지 않는 나비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괜스레 한숨을 내쉰다. 산목숨이라는 것이 이리도 허무한 것을. 미처 알아챌 틈도 없이 생사가 바뀌어버리다니. 나비의 연약한 몸이야, 저 무쇠 덩어리와 스치기만 해도 저승길이 아닌가.
어라, 저 녀석이 살아 있었네. 어설픈 비행 덕분에 옆으로 떠밀렸는가 보다. 이쪽으로 한참이나 도로 밀려나서는 중심을 잡느라 퍼덕이고 있다. 한숨을 골라서인지 위험을 감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제법 높이 날아오른다. 후퇴를 모르는 불굴의 전사처럼 또 전진이다. 세 번째 찻길로 커다란 시내버스가 저승사자처럼 달려온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 둘 다 멈출 기미가 없다. 기어코 나비의 옆구리로 버스가 들이닥쳤다. 차보다 조금 높이 난 듯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눈길에서 사라져버렸다.
높다란 버스가 일으키는 상승기류를 타고 오히려 힘을 얻었던 모양이다. 일차선과 중앙선까지 넘어 반대편 길 위를 신나게 날고 있다. 아래로 씽씽 달려가는 자동차들을 내려다보기까지 하면서.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더니 오히려 팔팔해져 저리도 가벼운 날갯짓이라니. 불운이 오면 행운도 뒤따라온다고 했던가. 비록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곤경에서 벗어난 여파로 오히려 다음 차도의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분명한 것은 나비가 의도해서 이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람 덕분에 잠시 수월한 듯하더니 뜻밖의 횡재도 이제 그 힘을 다했나 보다. 선로 두 개를 남겨놓고는 점점 아래로 주저앉기 시작한다. 그나마 차량이 뜸하니 조금 더 힘을 낸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으리라. 몸이 천근으로 무거워 보이지만 나비는 결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드디어 마지막 차로 반쯤을 지난다. 깜박깜박 우회전 등을 켠 승용차가 미끄러져 오고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서로 엇비껴 스친다.
횡단보도에 푸른 등이 들어 왔다. 우르르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나는 차마 앞설 수가 없어 맨 뒤에서 미적거린다. 생사를 확인하기가 두려워서다. 나비는 살기 위해 죽음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어느 순간 닥쳐온 풍파에 이끌려 들어가 파닥였다. 살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불가항력의 재앙 앞에서는 헤어날 도리가 없었다. 어쩌랴, 삶과 죽음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태생적 숙명인 것을. 요행을 바라며 다시 나비를 찾는다.
있다. 보도블록 위에 주저앉아 허덕이고 있다. 나비는 만신창이가 된 날개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래, 가쁜 숨이나마 숨 쉬고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게 어디에 있으랴. 이제 고난은 끝났으니 네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 보렴.
눈인사를 마치고 올려다보는 하늘. 나비가 다시 날아올라야 하는 그 파란 하늘. 가로등 사이에는 밤새 굶주린 무당거미가 삼중의 천라지망을 펼쳐놓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