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 박찬정
도쿄 메트로 긴자선(銀座線)의 좁고 어둑시근한 계단을 오른다. 밖으로 나와 마주친 긴자의 낯선 거리를 들어선다. 정이월 넘긴 햇살이라 찬 기운이 가신 듯해도 긴자의 빌딩 골바람은 앞섶을 파고든다. 찾아갈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눈은 두리번거리고 헤매는 발걸음은 마냥 느리다.
며느리에게 줄 목걸이 세공을 하러 나온 길이다. 목적은 아랑곳없이 명품관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도쿄에서도 비싸고 고급품을 판매하는 긴자 쇼핑가를 눈으로만 즐기고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끝내 놓아야겠지만 나중에 한들 대수랴. 애당초 값 비싼 세공을 맡기려 했다기보다 유행하는 귀금속 디자인으로 눈 호사나 하려는 속셈도 있었으니까. 문득 그 작은 알갱이가 잘 있는지 핸드백 속의 작은 주머니를 손끝으로 확인한다.
보증서에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은 삼부의 작은 다이아몬드를 지닌 지 삼십년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차남 장가 들일 때 쓰려고 그때 돈 오십만 원 계를 타서 마련해 둔 것이라고 나중에야 들었다. 어머니가 점찍어 둔 색싯감을 마다하고 아들은 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데려왔다. 어머니는 탐탁잖게 여기셨다. 결혼을 정한 후에도 어머니는 그 알갱이를 내놓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첫아이를 가져 배가 봉긋이 불렀을 때 어머니가 보증서가 같이 들었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조그만 색동 주머니를 건네주셨다. 나는 잔돈푼을 받아 넣듯 무심히 입고 있던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삼십 년을 묵혔다.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아들과 곧 며느리가 될 아이 앞에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삼십 년 전 할머니한테 받은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신부 결혼반지 맞추라고 호기 있게 말했다. 며느리 될 아이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결혼 준비물중 한몫을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 아이를 전차 역까지 배웅하고 들어온 아들은 색동 주머니를 도로 내놓으며 연인의 말을 전했다. 결혼반지는 당사자 두 사람이 장래를 함께 할 약속의 증표로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그걸 어머니가 해준다면 결혼반지의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다이아몬드가 든 색동 주머니를 도로 받아 넣었고 두 사람은 결혼반지로 가느다란 18K 반지를 똑같이 해서 끼었다.
꺼내었다가 다시 집어넣은 색동 주머니를 일 년 만에 다시 꺼내 들고 긴자로 나온 것이다. 며느리의 첫 생일을 맞아 선물로 목걸이를 해주마고 했다. 며느리도 이번엔 토를 달지 않고 반색했다. 직장에 갈 때도 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 화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이제야 그 알갱이는 쓰임새를 찾았다.
아들은 어릴 때 부모 따라 일본에 왔다. 누구나 살다보면 원하든 기피하든 그 나라 문화와 관습에 익숙해진다. 아들아이는 제 또래의 일본 여자와 교제를 했다. 아들의 연인이 일녀(日女))라는 말을 들은 친정 오라비는 선대에 민족주의가 강하고 독립운동에 가담한 가문이라고 일침 놓았다. 교제한다는 얘기지, 결혼을 정한 것은 아니라고 더 할 말을 잘랐다. 나 역시 아들의 결혼에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의 뼈아픈 양국의 역사나 국가 간 첨예한 문제가 가족 간 골을 파이게 하지 않을까, 정치가나 일부 인사의 이권 발언이 갈등의 불씨가 되면 어쩌나, 성장 문화가 다른 사람이 가족이 되어 부딪혀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텐데... 걱정하려고 들면 끝이 없었다. 며느리의 부모님도 우리와 비슷한 걱정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며느리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어른스럽다. 가족 간 한국식이니 일본식이니 나뉘는 일은 없다. 가까이 사는 사돈네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작은 보석은 이제야 목걸이로 세공되어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목걸이를 며느리에게 주기 전 고리와 메달을 찬찬히 살펴봤다. 아들이 “엄마! 며느리 주려니 아까워서 그래요?” “그래. 아까워서 삼년만 내 목에 걸었다가 줘야겠다.” 아들과 내가 농담을 주고받았다. 내가 손등이나 옷에도 문질러봤다. 세공된 부분이 매끈한지 옷의 올이 걸리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목걸이의 이음매는 튼튼하고 매끈하다. 시어머니가 여의치 못한 살림에 마련하시고 내가 고이 간직한 세월만큼의 의미가 보태어져 며느리의 목에서 빛나고 있다. 비록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지만 우리 가족 삼대가 이어져 있어 더 가치가 있다.
그 다이아몬드 알갱이를 마련하신 시어머니는 치매로 요양 병원에 계시다. 가족의 중간에 선 나는 한손으로는 고령의 시어머니를 부축하고 다른 한 손에는 새 식구가 된 풋풋한 며느리의 손을 잡고 있다. 언젠가 잡은 손을 하나씩 놓아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잡은 손을 살며시 놓더라도 지금은 양쪽을 꼭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