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장대비가 내린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꺾어지고 말 것을 어쩌자고 저리 내리꽂기만 하는 걸까.

꽤 오래전이었다. 서울이 잠겨버리면 어쩌나 싶게 이틀 밤낮 달구비가 쏟아졌다. 산동네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저지대 사는 친구네가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물을 퍼내고 있다고 했다. 비가 잦아들기 기다렸다가 집을 나섰다. 그녀의 집은 흙탕물에서 건져낸 옷처럼 수마水磨가 훑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친구는 자기 집에서 유일하게 비에 젖지 않은 곳이라며 나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창을 통해 흐릿하게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도 어두침침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직사각형 공간이 한꺼번에 들어 올려진 듯 환해졌다. 알전구 하나가 그렇게 많은 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달이 걸리면 혼자 보기 아깝다고, 그녀가 자랑하던 창문은 겨우 수건 한 장 크기가 될까 말까 했다.

두리번거릴 뿐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커다란 건전지를 등에 업은 카세트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끊기면 그녀는 염력을 불어넣듯 카세트를 꽉 쥐었다 놓았다. 신기하게도 다시 음악이 이어졌다. 우리는 개어 놓은 이부자리에 나란히 기대 빗물에 얼룩진 창을 바라보고 앉았다.

카세트에서는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건반악기 소리가 흘러나오고, 머리 위에서는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으로 밀고 당기는 선율과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친구는 지난밤 이 다락방까지 잠겨버리면 어쩌나 뜬눈으로 새웠다고 했다.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려고 테이프를 찾았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흐르고 있는 곡이 꼭 빗소리처럼 들렸다. 비 같은 음악 소리, 음악 같은 빗소리. 테이프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나는 행여 그녀가 깰세라 꼼짝하지 않고 앉아 물기 번져 전해진 백지의 꽃무늬를 세고 또 세었다.

그 후 다락은 우리 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거기에 있으면 우리는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기도,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현실감 없는 이야기도 무지갯빛으로 피어났다. 상상은 지지부진 전 날의 수위를 넘진 못했지만, 훗날 우리가 쓸 소설 속에서 정염을 태울 것이라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젊음이 무기이던 시절, 우리는 공부한다고, 비가 온다고, 눈이 내린다고 갖가지 이유를 대며 그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참빗처럼 촘촘한 가랑비가 오던 날, 우리는 창에 바짝 얼굴을 대고 엎드려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기설기 잇댄 슬레이트 지붕과 녹슨 영철지붕이 비에 젖어 우리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대로 붙박이가 되어버릴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구경삼아 내려다봤을 뿐인데, 골목 끝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몇 세대가 변소 하나를 함께 쓰고, 길갓집 현관에는 해진 신발들이 키 재기를 하는 곳. 삶의 허기를 채우듯 동물 모양 완구에 눈을 붙이고 인형 배에 헝겊 조각을 채워 넣느라 어두워질 때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가난이 더께처럼 붙어 있는 그 골목은 부정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

우리는 다락방에 붙어 지내면서도 인생의 황금기, 젊음을 실속 없이 소진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불안은 우울을 동반했고, 우울은 감성이 충만한 사람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눙치던 두 청춘은 김수영에 베토벤에 그리고 커피에 빠져 지냈다.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미래의 준비를 갇힌 공산에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관념어만으로 도배되어 일기장이 채워지고 그것을 낭만이라 여기는 치기가 그 시절을 견디게 했다. 다락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다락방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경쟁하듯 친구는 미국계 회사에 취직했다. 더불어 주머니 사정도 좋아져 그동안 가난했던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듯 시즌 티켓을 끊어가며 연극에 심취했고,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 선집과 클래식 명반을 사서 모았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자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던 약속을 언제 했냐 싶게 결혼도 했다.

딸 하나씩을 낳아 그 애들은 우리가 다락을 오르내릴 때의 나이를 훨씬 넘겼다. 가족처럼 느껴지던 골목길 꼬맹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래전 꿈속처럼 가물가물해질 만큼 긴 시간을 건너왔다. 삶에 발뒤꿈치를 물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달리는 사이 그 시절은 아득한 과거로 밀려나 있었다.

뉴스에서는 호우로 하천이 범람해 도로가 침수되고 수재민이 생겼다고 한다. 생활환경이 좋아졌다 해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퍼붓는 비를 보고 있다니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다락방에서 듣던 음악, 빗소리 같은 음악이 다시 듣고 싶다.

‘토카타와 푸가’를 듣는다. 가난도,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지울 수 있었던 다락방에서의 꿈이 사라진 탓일까, 삶에 찌든 탓일까, 아니면 꿈을 꾸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그때의 그 절절함이 없다. 꿈꾸던 다락방에서의 기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빗물로 넘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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