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늪 / 유양희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몸에 좋다거나 순수 국산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여행지 남해에서 돌아오면서 마늘 두 접을 샀다. 도로 양 옆으로 마늘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마늘장아찌를 담을 요량이었다. 그렇게 사재기를 하면 늙어가는 징조라고 친구들이 그만하라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습관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덧 나도 나이가 든 탓인지 지난 날 어른들이 하던 일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옛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서 온갖 푸성귀와 과일을 시골에서 한 짐씩 들고 올 때마다 왜 힘들게 그러시느냐고 얼굴을 찌푸렸건만 이젠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몹쓸 병으로 큰 수술을 받은 시어머니는 늘 하던 집안 살림을 못 하고 종일토록 불경만 읽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시누이에게서 텃밭에 난 야채들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다. 퇴근해 오니 어머니는 그걸 잔뜩 뜯어 와서 다듬고 계셨다. 나는‘쌀 한 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는 어머님의 건장하시고 씩씩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하루를 겨우 지탱하시는 모습이 보기에도 민망한데, 텃밭의 야채가 뭐 대수라고 힘들게 뜯어오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몇 푼 안 되는 채소 때문에 땀을 흘려가며 바스러질 것 같은 몸을 혹사하시는 모습이 측은해서 더 화가 났다. 한참 화를 내다가 생각하니 어머님은 그렇게 움직여 온 게 삶이었으니 푸성귀 하나라도 포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듯싶었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산다는 것은 생활의 연장이다. 생활은 우리를 편안하게도 하고 미련하게도 하고,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도 한다. 문득 목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일상적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으니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어머니는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러는 네 마음을 내가 다 안다. 내가 안쓰러워 그러제. 그래도 너희들 주려고 상추 한 보따리 챙겨올 수 있을 때가 좋고,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너희들 입속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가 행복하다.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게 마음 편하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죽음을 앞둔 어머님의 정신세계와 이어질 것 같았다. 당신의 일상은 언제나 평상심이었다. 며느리가 벌인 한바탕의 소동도 어머님의 마음엔 조그마한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그날 오래도록 어머니 곁에 누워 있었다. 잠드신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의 눈가에 맺힌 침침한 물기는 안질로 자주 그랬지만 그날따라 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수건으로 살짝 닦아 드리고는 일어섰다.

‘계획하고 산다고 해서, 죽는 것까지 예고되었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느냐. 시한부 인생이라고 특별히 할 일이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니더냐. 그래도 사바세계를 떠날 때까지 준비할 수 있는 긴 시간을 주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소리 없이 하룻밤 사이에 가는 사람도 있는 걸.’ 전부터 이런 말을 들어온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당신께서는 하나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마냥 당신의 일상을 지속하시었다.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더러 있었다. 직장과 가정의 일로 뒤범벅이 된 나의 몸과 마음이 한계 상황에 부딪칠 때에 그랬다. 때로는 밤새 섬 몇 개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침이 되면 늘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은 꼭 생각대로 실행하고자 하는 큰맘을 먹었다. 어디라도 떠나려면 비상금이라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오는 길이었다. 길가 트럭에서 채소 장수가 큰 소리로 ‘파 두 단에 천원’이라고 고함을 지른다. 아이쿠, 이게 웬 떡이냐고 얼른 두 단을 사서 차에 싣고 돌아온다. 냄새나는 파 두 단을 싣고는 오랜 시간을 돌아다닐 수가 없지 않은가. 오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돈 찾으러 은행갈 때와 돌아오면서 파 두 단 살 때의 마음은 뭐냐고 스스로 꾸짖고 만다. 나는 파 두 단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나는 파 두 단을 씻어 뚝뚝 잘라서 비닐 팩 속에 넣어 냉장고에 넣는다. 파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듯 나의 일탈 심리도 조금씩 사라지며 또 한참 동안은 냉동 보관 되고 만다. 괜히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집에 돌아오면 시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씩씩하게 부엌일을 하고 계시곤 했다.

부엌에서 일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졌다. 오늘, 나의 식구들도 집으로 돌아와 파 두 단을 다듬는 나를 보고, 오늘도 부재중이지 않은 아내, 엄마 때문에 편안해 할까?

삶은 일상의 연속이다. 나의 사재기 버릇도 일상을 영위하는 것일 뿐이다. 일상의 연장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편안함도 줄 것이다. 일상 속에는 일탈의 덫도 있고 늪도 있다. 이러한 늪에서 헤어난 오늘이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일상적 삶이 진정한 가치이고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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