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哭婢) 울다 / 이양주

 

섬은 뭍에서 고립되어 있다. 멀리 홀로 견디고 있다. 사방이 온통 물로 갇히어 버렸건만 하늘을 이고 묵묵히 자신을 감내한다. 한없이 누워 있는 바다는 하늘을 닮고 싶은 양 비슷한 색을 띠고 있다. 마치 일어서려는 듯 파도가 몸부림을 친다. 거센 물살을 가르며 섬으로 향하는 배의 갑판에 서서 소금기 묻은 바람을 가슴 깊숙이 마신다. 그들의 교류에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섬. 저 작은 섬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역이나 계층 간 또는 문화적인 소외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신나는 예술 여행’을 기획 지원하고 있는데, 오늘은 ‘국악, 여행을 떠나다’란 제목으로 음악회가 열린다. 이번 공연은 국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국악인 단체가 나섰다.

섬과 바다와 사람들을 온통 뜨겁게 달구었던 해가 더위에 지친 듯 서서히 서녘으로 향하고 있다. 마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장님의 목소리가 섬의 고요를 흔든다.

“주민 여러분.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서 음악을 들려 준다캅니다. 퍼뜩 저녁 챙겨 잡숫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소.”

어느 새 초저녁달과 별들도 모습을 드러내며 마치 초대 손님이 된 양 하늘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는 참으로 소박하다. 폐교의 열린 공간에서 바다를 병풍 삼아 연주자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고, 관객인 주민들은 반대편에 자리 잡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와 악사들의 화려한 의상이며 생소한 분위기에 다들 멋쩍어 하면서도 기분 좋아 들떠 있는 표정들이다.

뱃노래로 무대가 열린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배에 올라 파도 위를 두둥실 떠가는 듯. ‘어기야 디어차’ 함께 노를 젓는다. 긴장되었던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세상사 근심일랑 넓은 바다에 던져두고 시름없이 산다는 늙은 어부의 노래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흥부가 등장한다. ‘시르르 시르릉 실근 실근’ 소리꾼이 부채를 들고 판소리 흥부가의 박 타는 장면을 연출한다. 모두들 눈과 귀를 한껏 모아 판 속으로 빠져든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좌중에서도 얼씨구 잘한다며 추임새가 흘러나오고 손뼉 치고 웃으며 들썩이기 시작한다. 판이 점점 익어간다.

“동백꽃이 필 때면 오신다던 당신이 봄 여름 다 가도 종무소식일세.”

평창아라리의 애달픈 곡조가 흘러나온다. 소리하는 여인의 쉰 듯 구슬픈 목소리에 인간사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징징징 징이 운다. 북을 치는데 가슴을 때리듯 시원하다. 감춰 두었던 마음 속 슬픔과 외로움 원망 같은 것들이 자지러질 듯한 꽹과리 소리에 바스라진다. 가야금 선율을 타고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신명이 너울너울 어깨춤 추며 나온다. 소리꾼 여러 명이 목청을 돋우어 고조시킨다. 함께 휘몰아친다. 마치 굿판에 빨려든 듯하다. 한 바탕 절정에 이른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안의 것이 더 잘 보인다. 갯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훅 스며든다. 사람 냄새다. 주민들과 악사들과 나의 것이 서로 닮았다. 이 땅에 함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비슷한 슬픔과 운명을 지닌 게 아닐까. 소리하는 자도 듣는 자도 하나의 곡조에 녹아들어 어느새 분별이 없어진 느낌이다. 눈을 떠 본다. 깊숙해진 눈빛으로 서로의 가슴을 들여다본 것 같다. 슬픔의 곡조를 이기고 하나가 된 느낌이다. 말개진 서로의 얼굴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곡비(哭婢)가 생각난다. 그 옛날 양반집 상여 행렬 앞에서 대신 곡을 하며 가던 전문 울음꾼 노비가 있었다. 생을 하직하는 영혼을 내생으로 가는 길목에서 잘 가라 보내주고, 이승의 남은 자들의 아픈 가슴을 위무하던 곡비.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울음을 대신하며 아픈 삶을 풀어냈다.

이들이야말로 곡비가 아닌가. 내 설움, 네 설움 질펀하게 쏟아내어 속 시원히 울어도 보고, 앉은자리 차고 일어나 신명나게 한껏 놀도록 해 주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곡비가 아닌가. 슬픔이 다른 슬픔의 얼굴을 알아내어 대신 울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남을 위해 진정으로 아파하고 울어주는 이 과연 누구인가.

소리꾼도 글쟁이도 그림쟁이도, 국민의 녹을 받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을 대신해서 전문적으로 울 수 있는 진정한 곡비가 되어야 하리라. 서로에게 곡비가 되는 세상을 꿈 꿔 본다.

내 곁엔 어머니라는 무상의 곡비가 있었다. 당신은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자식을 위해 대신 끌어안아주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자식의 삶이 아플까 봐 결코 울음소리를 토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이승을 떠날 때 나는 과연 당신을 위해 진정으로 곡을 했던가.

악사들은 깊숙이 숨겨두었던 응어리진 내 슬픔을 하나 둘 끄집어내고 풀어내며 실컷 울게 해 주었다. 우리의 슬픔은 다르지 않다고, 슬픔이 맑게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마당은 모두 일어나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등 귀에 익은 민요를 함께 따라 부르고 어울리면서 마무리되었다. 다들 행복한 모습들이다. 허리가 굽은 구순이 넘은 노모가 ‘고맙다. 고맙다.’며 연주자들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흔들어댄다. 정신지체자도 서툰 말투로 고맙다는 인사를 따라 한다. 마치 깨어나고 싶지 않은 멋진 꿈이라도 한 바탕 꾼 듯 다들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밤바다에 달빛이 쏟아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물길 위에 금빛 비늘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섬도 오늘 밤만큼은 벌떡 일어나 젖은 몸을 털며, 바다 위를 성큼성큼 걸어 어디론가 한없이 가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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