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아래서 / 강천

 

 

후박나무 아래에 서 있다. 팔만 권의 책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심득이 서려 있는 곳이다.

마음이 들떴다. 언젠가는 꼭 찾아보리라 했던 불일암을 가는 날이라 성마른 생각이 몸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리던 봄비도 축복인 양 멈추었다. 이제 봄물 흠씬 마신 나무들은 다투어 꽃과 잎을 피워 올리리라. 복사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개나리.

법정 스님이 잠들어 계시는 불일암으로 가는 길에는 ‘무소유길’이라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스님의 글에서 따온 이름이리라. 발치 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글에 인연을 덧대고 사는 후학으로서 한 번은 참배하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말이 좋아 참배지 이게 어디 사심 없는 단순한 발걸음이겠는가. 스님의 드높은 족적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엮어보려는 내심이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으랴.

급한 길도 아니니 봄이 찾아들고 있는 숲길을 즐기며 느긋하게 걷는다. 일찌감치 봄맞이를 나온 분홍빛 진달래가 해사하게 웃고 있다. 산새들의 지저귐에도 생기가 넘친다. 겨우내 푸름을 지켜온 소나무와 조릿대도 이젠 한숨을 돌린 모양인지 사그락사그락 몸짓이 여유롭다. 인적 드문 산중 길섶에 자그마한 팻말이 서 있다. 무소유길 이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스님 작품 속의 문구가 발길을 붙잡는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찌 이리도 무리하고 불가능하다 싶은 말씀을 당연한 것처럼 하고 계시는가. 아무리 뒤집어도 보아도 내가 가진 것이나 알음 중에는 많고 큰 것이라고는 없다. 모든 게 사람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뿐이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남과 어우러져 살려다 보니 피치 못해 가지게 된 것들 또한 부지기수다. 인연도, 지식도, 하다못해 전화기도, 돋보기도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것들을 내려놓는 날이 이 세상을 마무리하는 날일진대. 넘치고 모자람의 차이조차 모르는 중생이 어찌 만족이라는 걸 알겠는가.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다른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참으로 스님다우신 말씀이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을까. 머리로 아는 그것과 행하는 몸이 따로 노니 문제이지.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무엇 하러 이 좋은 봄날에 여기까지 왔을까요. 스님, 이왕 이리 왔으니 고절한 깨달음 중에 뭣 하나라도 내려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명구를 읽다가 혼자 헛웃음을 짓는다. 내려놓으라고 하는 글 앞에서조차도 얻어갈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으니.

오롯한 대숲 길을 돌아드니 드디어 불일암이다. 가지런히 정리된 텃밭이 먼저 보이고 단출한 암자가 약간은 휑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당으로 드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우람하게 자란 일본목련 나무가 맞아준다. 갈잎나무라 아직은 마른 줄기만 앙상하다. 스님께서는 후박나무라고 부르시며 생전에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나무라고 쓰여 있다. 나무 아래에는 간짓대를 엮어 사각의 경계를 세우고, 그 안에 스님의 사리를 모셨다는 안내판이 있다.

부도도 없고, 상석도 없고, 그럴듯한 봉분도 없다. 그저 편평하게 땅을 고르고 흔적을 지웠다. 푯말이 없다면 여름날 한 손으로 나무를 짚고 서서 그늘이나 즐길만한 곳이다. 이 단출함을 대하는 순간, 세상이 잠시 하얗게 변한다. 이 보잘것없음이 손을 모으고 묵상하는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두드림이 된다. 이 평범함이야말로 그 어떤 상징물보다도 비범한 징표가 아니겠는가.

무소유, 평생을 참구해도 모자랄 화두다. 세속에서 울고불고하는 처지에 어찌 선승의 고담을 그리 쉬이 알까. 당신과 나의 거리만큼이나 어려운 숙제인 것을.

이미 한 몸이 된 것인지 후박나무 메마른 가지가 ‘청정을 방해 말고 어여 가라’고 봄바람에 흔들거린다. 글줄 하나라도 건져보려 들뜬 마음으로 왔다가 후박나무 아래 스님을 뵙고는 이도 저도 아닌 번뇌의 등짐만 걸치게 되었다. 하기야 이것도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인가. 헛바람 가득 든 주제에 평생을 정진한 수도자의 마음을 훔쳐보려 했으니 이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애당초 헛된 망상이었느니.

<수필과비평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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