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김나현

 

 

저마다의 바람이 액자에 걸렸다. 대나무 잎을 간질이는 바람, 잔물결에 노닥거리는 바람, 꽃잎에 속살대는 바람, 여인의 봄바람,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실체 없는 바람이 각양의 모습으로 액자 속에 담겼다.

종종 바람이 일었다. 세파의 파랑이 살 만하면 덮치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불쑥 불어 닥쳤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고, 갖고 싶고, 가고 싶은 내면의 바람은 가슴 속에 체념의 굳은살을 박여놓았다. 차곡차곡 재어둔 소박한 버킷리스트가 늘어났다. 그것은 내일이 있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탄탄대로로 뻗은 도로가 아닌 울퉁불퉁 흔들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오며 스스로 단련된 면도 없지 않았다.

나를 일으킨 보이지 않는 힘은, 나의 바람이 끈질기게 응축된 응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평생 진행형인 희망은 그 끝이 없겠지만, 절망에는 그 끝이 있었다. 다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어두운 터널 끝에서 작은 불빛이 환히 인도하곤 했다.

분출하지 못하는 바람, 잠재워야 하는 바람 앞에선 하지 못하는 고통이 수반한다. 나를 생기 차게 할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어깨도 처진다. 사는 일도 시들해진다.

40대에 자신의 이상을 이루었다는, 내가 아는 어떤 이의 말을 성서 말씀처럼 진리로 회자한다. 돈이 있으니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더라는 거다. 이 말은 돈 자랑이 아니다. 나이 마흔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가며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들인 노력을 감으로 헤아린다. 하고 싶고, 갖고 싶고, 가고 싶은 바람을 펼칠 수 없을 때면 그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경지이지만 그 상황에 이른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진다. 어떤 소망도 애초부터 포기라는 건 없다. 죽기 전까지는 유효할 것이기에.

소속한 사진동호회의 전시회 주제가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부는 바람[風]일 수도, 마음속 바람[願]일 수도, 또 마음을 흔든 훈풍일 수도 있다. 연초에 주어진 주제를 잡고서 꼬박 한 해를 보냈다. 어떤 바람을 잡을지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오리무중인 채로. 과연 바람을 피사체로 담을 수 있을까. 막상 잡으려 하면 그 실체가 묘연했다. 이삭이 막 피기 시작한 보리밭을 휘감는 바람이거나, 5월 초순 연둣빛 물오른 왕버들을 살랑살랑 나부끼게 하는 실바람도 좋겠고, 꽃잎이 동동 떠다니는 호수의 가장자리도 떠올랐다. 그러나 투명한 바람은 금세 방향을 바꾸어서는 다른 대상을 찾아 꼬리를 감추어 버렸다. 마치 운명으로 엮일 사랑을 찾아 끝없이 배회하는 마음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의 실체를 찾아 고심할 때 샬롯 졸로토의 동화 <바람이 멈출 때>가 떠올랐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날이 저무는 걸 보며 마음 아파한다. 왜 낮이 끝나야 하는지,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는지, 바람이 그치면 어디로 가는지……. 이에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소멸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소멸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있음을 조곤조곤 아이에게 설명한다. 눈앞에 머물던 바람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면, 나도 동화 속 아이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바람이 그치면 그 바람은 어디로 가나요?’라고.

나이 들고 해묵어가는 안락함에 만족한다. 새로 길드는 게 번거롭고, 새로운 관계가 거추장스럽다. 여자다운 여성성으로부터 조락하더라도, 감정의 기복도 잔잔해지고 모든 관계가 유순해지는 이즈음이 좋다. 그래도 하고자하는 바람은 끊이지 않고 샘솟는다. 하고자 하는 바람은 끊이지 않고 내면에 일렁인다. 그 바람은 네가 주인이 될 삶을 펼치라고 부추긴다. 나는 이런 바람이 좋다.

패러글라이더처럼 바람을 양 날개로 펼치고 훨훨 날고 싶다. 부는 바람을 따라 내 이상을 맘껏 펼쳐보고도 싶다. 끈끈한 의지 덕분일까. 이런 내면의 소박한 바람도 하나씩 풀며 산다. 결국 액자에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봄바람을 담았다. 매직아워magic hour의 짙은 음영 속에서 종일 바람이 불고 있다. 비로소 액자 속에 한 바람을 담은 게다. 이는 내가 가두고 싶은 마음이며 담고 싶은 한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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