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그레인 / 김희정

 

수국 필 때다. 엔들레스썸머 수국 한 송이에 꽃밭 한 평, 들었다. 수국은 꽃대 하나가 꽃다발처럼 푸짐하다. 여름을 축소하고 담장을 이루고 핀다. 입구에서 겨울 숲 같은 유칼립투스를 만난다. 수려한 구석도 없는데 왈칵 마음이 간다. 꽃 축제 출구에서 숲 몇 평, 골라 값을 치른다. 화분 속 좁은 땅마지기가 든든하다. 좌석 뒤에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수국은 꽃을 자랑하지 않고 꽃받침에 영광을 양보한다. 시절마다 장소마다 색을 고친다. 별나지 않고 고집 없다. 햇볕에도 욕심 없다. 유칼립투스는 빛에 강하게 노출될수록 색이 연해지는데 차림새는 복고풍에 가깝다. 먼지 쓴 비포장도로에 어울리지 않는 섬섬한 색이 좋다. 바람의 뒤꿈치에 눌려 밟힌 듯, 손때 묻은 만두피를 닮은 총총한 잎들을 서열 없이 줄을 서서, 각을 버리고 두루뭉술하다. 저채도의 바랜 녹색 잎이 발바닥을 포개고 마주난다. 지난봄 추위에 뒤척인 흔적인지 흰서리 얹은 허여멀건 한 이파리가 창백하다.

자연은 기교 없이도 정교하고 빛의 질서는 손대지 않고도 그대로 몽환적일 수 있다. 노이즈를 조절해 촬영하고서 후보정한 디지털 카메라 시진이다. 고의로 해상도를 기피한 필름 카메라 사진의 근성은 고치기다. 대상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약점을 가리고, 은은하게 번지는 효과도 노린다. 사진의 모서리를 뭉갠 배경 지우기 기법과 목적한 영역을 오려내는 기법도 있다. 유칼립투스의 도저한 탈색과 수국의 겸허한 품종 변화는 예술의 모방이거나 차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상실이다.

 

색에 예민했던 나는 사람 사귀는 일에도, 진하고 선명한 색을 고르느라 미지근한 색을 외면했다. 까다롭기 이를 데 없어서 둥글둥글하지도 못했다. 이파리가 뾰족해 사방에 부딪혀 꽃잎을 자주 다쳤다. 눈치 없이 피느라 분주하고 날렵했다. 어떤 시절은 서툴러 꽃잎이 모자라 듬성듬성하고, 어느 구간은 반질반질 욕심내느라 여백 없이 촘촘했다. 중심에 버티고 선 반듯한 대궁도 탄탄한 뿌리도 황금색 토양도 없었지만, 청춘은 가진 것 없이도 무성하고 만발했다. 이제 내 계절은 꽃 지는 일만 남았다.

과속을 달려온 삶엔 입구만 있었다. 어디로든 들어가야 했고 나가는 길도 없었다. 삶의 층위마다 요금소가 많고 터무니없이 긴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뺏겼다. 가고 싶지만 여러 길 가운데 하나의 목적지를 고르기는 더구나 어려워 헐값의 목적지를 선택했다. 엉뚱한 장소에서 아까운 인생도 낭비했고, 능력이 안 되는 경쟁 앞에서 고집을 피운 날도 많다. 성급해서 칠이 덜 마른 입구에서 엉덩이에 페인트가 묻기도 했다. 우연찮게 낀 줄에 붙잡혀 버티는 법을 배운 날도 있고, 잘못 찾아온 문에서조차 아직 나가지 못했다.

이제는 출구뿐이다. 입구는 어디에도 없고, 운영하지 않거나 구조가 변경되었다. 출구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 있다. 아직 발들인 적 없는 무채색의 변방으로 터를 옮기는 일이다. 좁은 출구를 나가는 일은 홀로파기다. 마주 난 이파리처럼 한 줄에서 마주친다. 생의 나들목마다 새 줄기가 돋아 나와 인생의 중앙분리대를 끼고 새로 도로에 들어서는 생명과 도로를 빠져나가는 생명이 교차한다. 입구는 붐비고, 한 번 출구를 나간 인생을 다시 만난 일은 없다. 나가는 동시에 색을 포기하고 흙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람에 꽃대가 부러질 수도 있고 물이 모자라는 날도 있겠지만, 지난한 날들 남은 꽃대를 밀어 올린다.

인생의 출발지를 들어서며 발행된 카드는 나가는 곳에서 결재를 마쳐야만 차단기가 열린다. 통행료는 총거리로 환산된다. 내가 피던 땅에 지불하는 한 송이 꽃값이다. 살아온 생장 기록이다. 최종 목적지는 최초의 입구로 유턴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끼어들기 금지. 나가기 몇 미터 전부터 짧은 경고성 문장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붙어있다. 도로는 먼저 가려는 차들로 뒤엉키지만, 인생의 종착지에 이르면 우리는 아마 남의 차를 먼저 보내려고 끼워 넣기를 하며 서로 부지런히 양보할지 모른다. 비겁하게 뒷걸음질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무난히, 내 어수룩한 모습을 흘리지 않고 시비 없이 인생의 출구를 나가고 싶다.

 

식물은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엽록소를 탐하느라 서로 다툰다. 색을 드러내는 일은 식물의 본능이지만, 수국이나 유칼립투스는 햇빛 아래서도 자유롭다. 양지 비켜주기다. 엉뚱한 자리에 나는 꽃도, 이파리도 없다. 집착하지 않는다. 수국과 유칼립투스의 무욕의 겸허는 의도한 함축이며 필름 그레인의 지우기다. 철학적 하심下心이 아닐까 한다. 흐름 끊어진 도로에서 삶을 유추한다. 햇볕을 차지하려고 나는 얼마나 분분했던가. 보이는 색깔에 욕심냈던가. 종류가 같은 다수에게 종류가 다른 소수는 구조적으로 열등해서, 화려한 꽃무리에 섞인 잡풀이나 비루한 무덤에 돋는 풀 한 포기도 제 가치가 가려진다. 상식과 상관없이 이미지가 먼저 대상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극極한 것만 훌륭한 건 아니다. 눈이 보이는 찬란한 원색보다 중요한 건, 본능이 배설하는 질質이다. 뒷좌석에 태운 수국은 생생한데 나는 자꾸만 졸린다. 유칼립투스는 여전히 얌전하다. 수국은 꽃에 향기도 없는데, 차 안에 꽃 방귀 냄새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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