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라는 신 앞에서 / 신재기

 

 

 

 

종이 위에 빼곡히 박힌 글자가 나를 꼬나본다. 와닥닥 뛰쳐나와 내 면상을 후려칠 기세다. 때로는 그 글자가 칼날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내 자존심을 사정없이 깔아뭉갠다. 책 속의 문자들 앞에서 가슴 조이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을 열지 않는 것이 상책이어서 한참 동안 멀찌감치 밀어놓거나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손수 책임 교정을 보거나 제작 과정에 얼마간 관여한 책이 출간된 후 책장을 처음 넘겼을 때 내 심경은 언제나 이러했다. 어디 책뿐이랴. 한 편의 논문이나 짧은 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잘것없지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얼굴을 내미는 글자 앞에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이제는 두려워서 아예 피하고 싶다. 그것이 사람이었다면 벌써 인연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글자와 맞서거나 섬기는 일을 숙명처럼 안고 오늘도 바장거리고 있으니 이 무슨 악연인가?

두려움과 기대감을 함께 안고 새로 나온 책을 여는 순간 오탈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할 정도로 교정을 보았건만, 이게 웬 말인가. 단순한 오탈자나 맞춤법의 오류가 아니고 고유명사나 연도가 시위하듯이 잘못 박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이때 가장 먼저 엄습하는 것은 자괴감이다. 글자 한 자에 내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다. 이 일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그간 쏟았던 노력과 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순간에 지워지고 환멸만 덩그렇게 남는다. 신이 아닌 이상 이런 오류는 흔한 것이라고 하며, 과잉반응을 보이는 나를 병적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신문사 주간을 맡고 있을 때 사람 이름의 오기로 신문을 다시 인쇄했던 일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내 책임 아래 출판물을 만든 초창기의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글자와 싸워서 늘 패배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거나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탈자 및 맞춤법 오류로 곤혹스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일이 더 확대되어 욕을 먹거나 문책을 당했다는 말도 들었다. 소문에 전하는 이야기다. 활판인쇄를 하던 때 어느 신문 기사에 '大統領'이 '犬統領'으로 인쇄되었다는 것. 식자공이 '클 大' 자를 '개 犬'으로 잘못 뽑고, 교정 과정에서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이후 이 신문사는 '大統領'을 한 꾸러미로 묶어 식자했다고 한다. 군 장성 출신 대통령 시절, '대통령'에서 '통' 자가 빠져 '대령'으로 인쇄될 뻔했는데 교정 단계에서 바로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작가가 책에서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기술해 시중에 배포된 책을 수거하고 다시 인쇄했다는 치명적인 실수담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 머리끝이 곤두서는 듯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의 낭패감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교서감校書監敎과 서적원書籍원이란 기관을 두고 서책간행을 관장했다. 원문 교정 작업에도 많은 신경을 썼으나 착오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중종 때에 이르러 잘못이 있는 경우 담당자를 처벌하는 벌칙 조항까지 제정한다. 1573년 교서관에서 을해자로 『내훈』을 중간했는데, 인쇄 상태가 정밀치 못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겨 관원과 장인이 이 법령에 따라 처벌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법령집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수록된 철저한 교정을 위한 법규를 보면, 감인관監印官 이하 관원은 매권에 오자 1자가 있으면 곤장 30대에 처하고, 합쳐서 5자 이상이면 파면했다. 지금과는 문학적 패러다임이 다른 시대이긴 하지만, 그 문책이 절대 가볍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현재 상황을 그 당시로 옮겨 놓는다면, 끊이지 않는 곤장으로 내 몸은 아마 만신창이가 되었거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말의 정확한 표기를 목적으로 정해 놓은 어문 규정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이 있다. 더 나아가 맞춤법에 속해 있는 띄어쓰기, 문장부호, 정확한 문장 쓰기까지 더하면 복잡하고 어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다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융통성 없음은 짜증까지 보탠다. 이러한 규정에 맞게 오차 없이 우리글을 적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 이처럼 복잡한 규정을 만들어 국어 표기를 통제하려고 하는가. 디지털 매체나 젊은 세대에 널리 퍼져 있는 국어 표기의 해체가 언중의 의사소통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표기의 작은 오류는 실용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언어 공동체가 규정에 따른 정확한 표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소통이란 실용성보다는 이념적 차원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정확성을 지향하는 문자의 속성과 문자문화의 관성이다.

내가 주간을 맡고 있는 잡지 겨울호에 한 수필가의 이름에 오기가 있었다. 교정을 도와주는 사람이 잘못을 수정해 주었는데도 최종 교정을 책임지는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 그의 이름이 처음부터 잘못 입력되어 있었다. 이름도 가끔 들었고 한두 번 만난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름 표기가 잘못된 점은 그렇다 치고 평상시에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점이 미안했다.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다면 무시당한 것 같아 크게 서운했을 것이다. 일단 문자로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의 답 글이 고마웠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전혀 개의치 말라며, 오히려 글을 실어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 내 실수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는데, 마찬가지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간 내 글이나 남의 글에서 표기의 작은 오류를 두고 너무 까다롭게 반응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실수에 대한 너그러운 수용도 필요하지만, 어쨌든 문자 표기는 정확해야 한다. 문자는 종이에 고정되는 순간 더는 수정할 수 없다. 구술언어와는 달리 인쇄물에서는 문자가 전부를 말한다. 문자의 정확한 표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쇄되기 전에 완벽하게 정확성을 확보해야 한다. 문자 기록의 이러한 확장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금석문자가 아니겠는가. 정확성은 문자 표기의 생명이고 본질이다. 교정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오탈자가 없고 문법에 맞는 문자 텍스트를 생산하는 일은 신을 경배하는 의식과 같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사람은 문자의 신을 섬기는 존재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신을 섬기는 일은 '왜'라는 이유나 논리 너머에 있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나의 신은 조금씩 신성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섬겨온 신을 버릴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신 앞에서 갈 바를 몰라 헤매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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