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스톤마운틴에 새겨진 영광

 댓글 2025-04-30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리 장군은 뛰어난 전략가로, 그의 능력과 인품으로 남군을 이끌었다. 잭슨 장군은 “돌담처럼 버티고 있으니 여기서 싸우면 이길 것”이라는 전투에서의 용기를 주었기에 ‘돌담 잭슨’이라고 불렸다. 이 기념물은 1923년에 시작해 1970년에 완성되었으며, 완공 당시에는 리 장군의 어깨 위에 상을 차려 20명이 앉아 식사를 했다고 한다.

나는 잔디에 앉아 거대한 기마상을 바라보았다. 남북전쟁은 나에게 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에서 배운 역사일 뿐, 이민자로서 그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 뉴스에서 이곳이 남부 연합의 유산과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논란이 된다는 이야기를 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풍 나온 가족들이 있었다. 풍선을 든 아이들, 간이 의자에 앉아 쉬는 노부부,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관광객들까지. 그들은 과연 스톤마운틴과 인종차별을 연결지어 생각할까? 나처럼 단순히 예술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잔디의 습기로 바지가 젖어 케이블카에 올랐다. 흔들리는 유리창 너머로 세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패배의 그림자로 어두웠다. “누구나 전사는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패배는 예상하지 않았다.” 마가렛 미첼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말했다. 그들의 역사는 슬프게도 패배로 얼룩졌다. 스톤마운틴의 기마상은 그들의 열정을,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산 정상은 의외로 평평했다. 사방을 둘러보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다. 멀리 애틀랜타의 마천루들이 솟아 있고,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 바닥에 군데군데 작은 물 웅덩이가 푸른 하늘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돌 틈에서 자라나 외롭게 서 있었다. 어떻게 돌 사이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물이 없는데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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